2. 정부 가격개입은 이제 그만
'소비자 보호' 앞세운 정부
금융시장 전체에 잇단 '입김'
"금리·수수료 등 정부 개입 효과
단기간에 끝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소비자에 피해"
[ 강경민 기자 ] “2018년은 금융 분야의 개혁은 없고 개입만 존재한 한 해였다. 정부는 관치금융을 넘어 금융을 관에 예속하는 ‘관속’(官屬) 단계로 금융산업을 후진시키고 있다.” 비영리 소비자단체인 금융소비자원이 2018년의 금융소비자 현안을 소개하면서 내놓은 금융산업 평가다. 정부는 2018년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ㅁ, 각종 보험료 인상 억제 또는 인하, 은행 대출금리 인하 등의 방식으로 잇달아 시장 가격에 개입했다. 전문가들과 금융회사 관계자들은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19년엔 정부가 시장 개입을 그만두고 ‘선의의 관리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소비자 보호 앞세워 잇달아 개입
정부가 2018년 금융시장에 직접 개입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소비자 보호’다. 소비자가 부담하는 비용을 낮춰 소비자에게 편익이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비용은 금융사가 사실상 100% 부담한다. ‘금융회사가 소비자 돈을 굴려 쉽게 이익을 낸다’는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도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데 한몫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말 신용카드 우대 수수료 가맹점 범위를 기존 연매출 5억원 이하에서 30억원 이하로 확대했다. 수수료 인하 여력은 고스란히 카드회사 손실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위기에 몰린 카드사들은 올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카드업계에선 올 한 해에만 임직원 및 카드 모집인, 밴사 및 밴대리점 종사자 등을 통틀어 1만여 명이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보험료에 대한 금융당국의 개입도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동차보험과 실손의료보험이다. 자동차보험은 높은 손해율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정비수가 인상으로 손해보험사들의 적자가 불어나고 있다. 보험업계는 최소한 7~8%의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당국에 제출했지만, 실제 인상률은 3%대에 머물렀다.
정부는 실손보험료도 올해 8.6% 낮추라고 보험회사에 주문하고 있다. 기존 의료 비(非)급여항목을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는 급여항목으로 바꾸는 ‘문재인 케어’ 시행에 따라 실손보험이 반사이익을 본다는 이유에서다.
금융당국은 대출금리 산정체계 개편작업을 통해 대출금리 인하도 유도하고 있다.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가산금리에도 개입 수위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시중은행은 지난해 금융당국 눈치를 보며 가산금리를 일제히 낮췄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초 가산금리를 인상하려다 백지화하기도 했다.
“금융시스템 안정 뿌리째 흔들려”
전문가들은 소비자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정부 정책이 시장 질서와 경쟁을 왜곡하는 등 적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 전직 고위관료는 “금리, 수수료, 보험료는 개입이 상대적으로 쉽고 효과도 단기간에 나타날 수 있어 금융당국 관료들은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그 효과는 단기간에 끝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가격 개입에 따라 금융사의 상품과 서비스가 획일화되고,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장기적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앞서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MB 물가지수’는 정부 가격 개입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국제 유가가 치솟는 등 물가가 급등하자 서민 생활에 밀접한 52개 품목을 대상으로 개별 공무원 이름까지 걸고 가격 관리 책임을 맡겼다. 하지만 오히려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이듬해 더욱 오르는 등 결과는 대실패로 끝났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카드 수수료 개편과 실손보험료 등 금융권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잇단 가격 통제는 자율시장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정치 논리에 따른 ‘정치금융’이 가격 개입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앞서 카드 수수료 인하도 문재인 대통령의 긴급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잇달아 수수료 인하를 내세우며 정부를 압박했다. 정치권이 민간 분야인 금융을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는 만능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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