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美와 대화 의지 밝히며 '플랜B' 경고…노림수는 제재 완화

입력 2019-01-01 18:21  

'강온 전략' 김정은 신년사

7년째 육성 신년사…'2차 담판 - 새로운 길' 美에 공 넘겨

南엔 "연합훈련 중단·경협 재개"…美엔 "제재·압박 풀어야"
비핵화 원칙 밝히면서도 核폐기 언급 안해…트럼프 반응 주목
전문가 "과거 核은 협상 대상서 제외"…美·北협상 험로 예고



[ 박동휘/김채연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올해 신년사는 표면상으로는 2012년 집권 이후 가장 덜 호전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번 신년사에서 ‘전쟁’이라는 단어는 세 번 나오는 데 그쳤다. 반면 ‘평화’는 25번이나 등장했다. 지난해 나온 ‘핵단추’라는 표현도 사라졌다.

김정은은 그러나 한반도 평화의 핵심 조건인 핵폐기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미국과의 협상 의지만 강조했을 뿐이다. ‘기존 핵’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김정은이 예고한 2019년 한반도의 정세는 ‘위험한 평화’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핵보유국’ 지위 강조한 김정은

김정은의 올해 신년사는 그 어느 때보다 국내외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세 번의 남북한 정상회담과 사상 첫 미·북 정상회담이 성사됐으나 북한은 작년 11월 초 미국과의 고위급 회담을 무산시킨 이후 비핵화 실천에 관해선 침묵으로 일관했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주요 관심 대상이었다.

김정은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우리 국가의 핵무력은 미국이 모험적인 불장난을 할 수 없게 제압하는 강력한 억제력”이라고 강조했다. 올해는 그러나 ‘핵’ 발언을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다만 유일하게 핵무기를 언급한 부분에서 김정은은 “우리는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을 내외에 선포하고, 여러 가지 실천적인 조치들을 취해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전형적인 ‘핵보유국’의 논리라고 평가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조치로 ‘미래 핵’은 포기하되, 핵무기·시설 신고 등 ‘과거 핵’과 관련한 조치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는 방향으로 가려는 것 같다”고 했다.

통남(通南) 전략 지속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지난해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을 “사실상 불가침 선언”이라고 언급하는 등 남북 관계 개선 의지도 강하게 담았다. 지난달 30일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서울 답방 의지를 확인한 데 이어 이날 신년사에서도 ‘통남(通南) 전략’을 지속할 것임을 강조했다.

대신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요구조건을 내걸며 더욱 적극적으로 대북제재 완화를 압박하기도 했다. 김정은은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이어 “외세와의 합동 군사연습을 더 이상 허용하지 말아야 하며, 외부로부터의 전략 자산을 비롯한 전쟁장비 반입도 완전히 중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핵개발 북한’과 적대했던 우리 정부가 ‘핵보유 북한’과는 평화를 외쳐야 하는 한다는 게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은은 “북남 관계를 저들의 구미와 이익에 복종시키려 하면서 우리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의 앞길을 가로막는 외부 세력의 간섭과 개입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미 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에 다시 ‘공’ 넘겨

김정은은 미국과의 협상 여지를 열어놨다. 김정은은 “완전한 비핵화로 나가려는 것은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불변한 입장이며 나의 확고한 의지”라고 했다. 이어 “언제든 또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고 제안했다. 2차 미·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공’을 또다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넘긴 것이다. 김정은은 대신 “미국이 자기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 들고 제재 압박으로 나간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제재 완화 및 종전선언을 요구하며, 이를 얻지 못한다면 또다시 핵실험 국면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플랜B’ 전략을 내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관심의 초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북한 문제를 거론하면서 “우리는 잘하고 있으며 서두르지 않겠다”고 밝혔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지금까지 트럼프의 행동을 감안하면 백악관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 없이 미·북 간 롤러코스터식 협상을 반복할 수 있다는 예측이다.

박동휘/김채연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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