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난생처음 발레를 봤어요. 저도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요.” 몇 년 전 울릉도에 사는 한 소녀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 본 공연으로 꿈까지 갖게 됐다니, 가슴 뭉클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매년 말이면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는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 공연된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아름다운 음악과 동작들이 가득해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이 찾는다. 해맑은 웃음소리로 어린이 천국이 되는 공연장 로비를 보고 있으면 그 소녀가 떠오른다.
필자가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취임하고 공연을 영상화해 전국에 상영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 2013년이다. 실황을 상영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영화관에 손색없는 최고의 화질과 음질을 보여주고자 목표했다. 시작할 때만 해도 책정된 예산이 없다 보니 일이 쉽지 않았다. 돈 문제보다 더한 고충은 “공연은 공연장에서만 봐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상영회에 누가 보러 오겠느냐”는 시큰둥한 반대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티스트의 열연과 화려한 볼거리로 가득한 오페라와 발레 공연이 단 몇 회로 그치는 것에 늘 아쉬움이 컸다. 일회성으로 휘발되는 것도 씁쓸하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시골이나 섬에 사는 어린이들에게 공연이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는 우리 현실이었다.
예술의전당 영상화 사업 ‘SAC on Screen’은 전국 각지의 군민회관을 행복과 만족을 선사하는 꿈의 무대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상영회는 수백 명이 앉는 큰 시설뿐 아니라 십수 명만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곳에서도 펼쳐진다. 몇 명 되지 않는 지역민이 아이들과 오순도순 앉아 스크린을 향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공연감상 기회가 그만큼 드물었으리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 보람이 더욱 크다.
첫걸음을 떼고 6년이 지난 지금, 영상화 사업은 순수예술공연의 향유 기회를 비약적으로 확대했고, 정부로부터 우수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소도시와 섬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 그치지 않고 750만 동포를 위한 해외 상영회도 140여 차례 열었다. 현재 총 37만 명이 관람했고 오페라, 발레, 클래식 콘서트, 뮤지컬을 포함하는 34편의 레퍼토리가 관람객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공연 입장권이 너무 비싸서, 혹은 클래식 음악은 생소해서 등의 이유로 예술의전당을 찾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찾아 나설 생각이다. 해외에서는 보편화된 이런 노력에 공공예술기관들이 동참하다 보면 울릉도의 소녀가 세계적인 발레리나의 꿈을 이루는 날이 더 일찍 찾아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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