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아의 '북한 뉴스 대놓고 읽기'] (4) '무엇'보다 '누가'가 중요하다

입력 2019-01-03 15:10   수정 2019-01-03 15:18


[들어가며] 통일부에 출입하며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을 읽기 시작한 게 2017년 4월부터였습니다. 때로는 어이 없고, 때로는 한글인데 무슨 말인지 모르고, 때로는 쓴웃음도 나오는 북한 뉴스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북남관계는 결코 조미(북·미)관계의 부속물로 될 수 없다.”

노동신문이 3일 보도한 논평의 일부다. 이걸 본 기자는 “별 것 아니네” 하고 넘어간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가 지난 1일 발표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윗 화답’을 날리면서 다시 화기애애해질 기미를 보이는데도 말이다. 왜 그럴까. 노동신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특정 메시지를 발표할 땐 “누가 발표했느냐”를 가장 먼저 봐야 한다. 내용이 무엇인진 그 다음에 봐도 늦지 않다. 어느 나라든 똑같은 내용이라도 대통령의 발표와 언론의 논평의 무게감이 다르단 사실은 동일하다. 하지만 북한은 ‘김씨 왕조’를 신처럼 섬기는 시스템으로 작동되는 체제다. 이 체제에선 발표의 주체가 더욱 철저히 구분된다.

가장 약한 수위는 우리민족끼리나 메아리, 조선신보와 같은 대남선전매체의 기사로 발표되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는 기사기 때문에 대외 문제에 대해 더욱 포괄적으로 다루고, 표현 역시 노동신문과 같은 관영 대내 매체보다 훨씬 과격하다. 예를 들어 우리민족끼리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지난해 12월 25일 “우리 국가에 대한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도발적이며 악의적인 행위들은 반드시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문장만 보면 살벌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이것을 보고 정말 벌벌 떠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참고용 자료로 삼을 뿐이다.


그 다음 수위는 대외용인 조선중앙통신과 대내용인 노동신문의 기명 논평이다. 특히 노동당 기관지이자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배포되는 노동신문의 경우 북한 언론매체 중 가장 무게 있게 평가된다. 당의 노선을 직접 대변하기 때문이다.

언론 매체보다 더 나아간 단계는 당 또는 정부 차원의 성명 또는 담화문이다. 보통 제일 낮은 단계는 각 부처 산하 협회들의 발표문 또는 공개질문 형식의 논평이다. 그 다음은 각 부처의 부상(우리의 실·국장급~차관 사이) 또는 제1부상(차관급)의 성명 혹은 발표문이다. 최고 수위는 공화국 성명이다.

김정은은 이 ‘전통’을 깨고 2017년 9월 2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성명’을 발표했다.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직접 성명을 낸 건 이 때가 처음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당시 북한을 맹비난한 데 대한 앙갚음적 성격이 강했다. “미국의 늙다리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다”란 말도 이 성명에서 나왔다.

김정은의 신년사가 올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유도 그가 직접 한 해의 계획을 밝히는 자리기 때문이다. 북한에선 신년사를 생방송하지 않는다. 모두 사전녹화한다. ‘최고존엄 무오류 원칙’에 따른 것이다. “최고지도자의 말은 틀린 게 없고, 틀려서도 안 된다”는 원칙이다. 이 때문에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집권 이후 2013년부터 계속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했을 때 주변에선 상당히 흥미롭다고 평가했다. 서양식 서재처럼 꾸민 장소에서 1인용 소파에 앉아 편안한 모습으로 신년사를 하는 모습 역시 철저히 연출된 것이었다.

북한의 메시지 전달 방식을 보면 이 체제의 피라미드가 얼마나 견고한지 확인할 수 있다. 이 곳에선 특종이나 전격 발표가 존재할 수 없다. 외부 입장에선 너무나 폐쇄적이기 때문에 전격적으로 비춰질 뿐이다. ‘극장 국가’라 불리는 북한의 단면이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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