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위기 몰린 김진락 이앤엠 대표 울분 토로
환경부, 공장 승인해줬다가 정권 바뀌자 돌연 '불허'
정부 믿었다 쫄딱 망할 판…기업 키우려던 게 죄냐
공장 새로 지어 직원 3배로 늘리려 했지만 헛꿈만…
[ 고윤상,심은지 기자 ]
김진락 이앤엠 대표(사진)는 인터뷰 내내 지친 기색이었다. 김 대표는 3일 한국경제신문 기자와 만나 “된다고 해서 시작했고 하라는 건 모두 다 했는데 정부가 이렇게 ‘뒤통수’를 치는 법이 어딨냐”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저지른 죄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믿고 기업을 키우겠다고 나선 것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2016년 팔당·대청호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이자 고향인 경기 이천시에서 배전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공장을 키우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2005년 설립된 이앤엠은 엘리베이터 부품 등에 사용하는 전기공급 및 전기제어 장치 제조업체다. 2017년 기준 매출은 234억여원이다.
▶공장 증설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습니까.
“배전반 수요가 늘어나면서 공장을 늘릴 필요가 생겼습니다. 경기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에 6만6000㎡(약 2만 평) 규모의 땅을 사기로 했습니다. 이천에서 자랐기 때문에 고향에서 사업을 키워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공장 예정부지가 팔당·대청호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 2권역에 포함돼 있었지만 이천시에선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천시는 왜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까.
“특별대책지역 1권역은 공장의 신축과 증설이 불가능에 가깝지만 2권역은 제한적으로 허용해줬습니다. 우리 회사에 앞서 7건의 허가 사례도 있었고요. 이천시가 국토교통부와 환경부 등에 의견을 구했고 문제없는 것으로 나왔어요. 국토부 심의를 받아 (산업단지) 지구지정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순조로웠네요.
“시청 등에서 받은 서류를 근거로 기업은행이 연이율 3%로 50억원을 대출해줬습니다. 그 돈으로 부지를 샀습니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2개 공장 중 하나를 팔아 토목과 건축 설계도 했어요. 각종 기계 장비도 발주했습니다.”
▶문제는 언제 터졌습니까.
“환경부가 2017년 7월 고시 위반을 이유로 산업단지 설립에 동의하지 못하겠다고 통보를 해오면서부터입니다. 충격이었죠. 사업을 추진했을 당시엔 제한적 허용이었는데 이제는 고시 해석을 원천 금지로 바꿨으니 공장 증설을 허가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럼 기존에 해준 것은 뭐냐고 물었더니 실수했다면서 담당 공무원을 징계할 것이라고 합디다. 이게 실수했다고 하면 끝날 일입니까. 이천시는 8월 산업단지 승인신청서를 반려해버렸습니다. 사람이 미치지 않겠어요. 문재인 정부 들어 임명된 환경부 장관이 수도권 공장 허용을 이른바 ‘적폐’로 규정했다는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처분을 내린 이천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는데 패소했어요. 1심에서는 환경부가 고시 해석을 바꾼 결과여서 이천시 책임이 없다더군요. 환경부에 소송참가인으로 나오라고 하니까 안 나오더라고요. 이후 지방자치단체들과 지역 내에서 고시 해석 변경을 놓고 논란이 커지니까 환경부가 민간 합동으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습니다. 겨우 해결이 되려나 했는데 이마저도 좌초됐죠.”
▶TF마저 잘 안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기존 고시의 제한이 논란이 되니까 이를 금지로 명확히 하되,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 조건을 갖춘 기존 기업에 한해서는 토지 용도 변경을 동의하는 내용이었어요. 지난해 4월 대통령 직속기구인 규제개혁위원회도 통과했고 6월에는 입법예고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와 인천시가 강력 반대하고 나섰어요. 일부 환경단체도요.”
▶이유가 무엇입니까.
“수돗물 오염 우려죠. 저도 맑은 물 마시고 싶은 마음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실제 영향 여부를 따져서 지역 개발과 환경보호의 균형점을 찾아야죠. 우리 공장은 배전반을 생산하는데 규제 대상인 오염 배출 물질이 없습니다. 게다가 상수원과의 거리가 물길로 50㎞ 이상 떨어져 있어요. 아무리 설명을 해도 듣지를 않더군요. 환경부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만 고수합니다. 이젠 앞이 캄캄합니다.”
▶이제 어떻게 할 계획입니까.
“부도날 일밖에 더 있겠습니까. 헌법 소원을 낼 생각도 해봤는데 관뒀어요. 몇 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데 이 상태라면 그 전에 망할 게 뻔해요. 공장을 비수도권으로 옮기라는데 그게 말이 쉽죠. 일하던 직원들은 어떻게 합니까.”
▶직원들은 어떻습니까.
“회사를 접으면 100여 명의 식구도 거리로 나앉는 거죠. 고용 불안으로 우울증을 호소하는 직원도 생겨났습니다. 새로운 공장이 정상화되면 전체 직원이 300명에 육박할 것으로 봤는데 헛꿈만 꾼 셈이 된 것 같습니다.”
■"지자체가 규정 잘못 적용했다"는 환경부
2011~2017년 7건 승인은…
환경단체 출신 장관되자 재검토…고시 어겼다며 50여명 징계도
공장 이전 준비하던 기업 '멘붕'…유사사례 많아 소송 이어질 듯
환경부는 ‘팔당·대청호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 지정(팔당호 특별대책지역)’ 고시에 대한 해석을 갑자기 바꾼 것에 대해 “팔당호 상수원 규제는 그대로인데 행정 공무원들이 실수로 허용해왔던 것을 바로잡은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여 년간 환경부의 일관된 해석에 따라 공장 이전을 준비하던 기업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3일 환경부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7년까지 팔당호 인근에서 일반산업단지가 승인된 건수는 7건에 이른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국토교통부의 ‘산업입지개발통합지침’을 달리 해석하면서 상수원 인근 개발에 시동이 걸렸다. 그전까지는 이 지침에 따라 개발이 전면 금지됐었다.
‘팔당호 특별대책지역’ 고시가 유의미해진 것도 2008년 이후부터다. 이 고시는 ‘자연보전지역, 농림지역 및 관리지역 중 보전·생산관리지역을 도시지역 중 공업지역으로의 변경은 제한한다’고 규정한다. 경기 이천, 광주, 여주 등 상수원 지역 지방자치단체들과 환경부 담당자들은 그동안 고시에 담긴 ‘제한’이라는 용어가 전면적으로 설립을 허용하지 않는 ‘금지’와는 다르다고 판단했다.
환경부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취임 직후인 2017년 7월 관련 내용 검토를 지시했다. 환경부는 “과거에 어떤 경위로 착오가 있었는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동안 현장 공무원들이 고시를 어기고 있었다”며 “법제처도 제한은 사실상 금지를 의미한다고 유권해석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환경부 내에서 감사를 받은 인원만 200여 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50여 명이 징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는 징계 강도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환경부 관계자는 “기업들이 호소하는 부분도 일견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행위를 합법화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팔당호뿐 아니라 4대강 상수원 개발 지역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은 만큼 ‘줄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환경단체 등쌀에 몸사리는 수도권 지자체
정부, 규제 개선방안 내놨지만 '상수원 보호 여론' 과도한 의식
서울·인천시, 무조건 개발 반대
환경보호단체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면서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도 막강해지고 있다. 지자체들은 지속가능한 국토 개발을 추진하겠다면서도 환경단체의 비판을 지나치게 의식해 개발이라면 일단 반대부터 하는 상황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환경부의 ‘팔당·대청호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 지정 및 특별종합대책’ 고시는 지난해 6월 개정안이 입법예고됐지만 이후 한발짝도 진전되지 못했다.
환경단체와 지자체의 반대에 부딪혀서다. 고시 개정안은 보호지역에서 공업지역으로 토지 용도 변경을 전면 금지하되 이미 절차를 진행 중인 사업자에는 예외를 허용해주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환경단체들은 개정안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분명히 했다. 인천환경운동연합은 지난해 9월 성명을 내고 “환경부에서는 상수원 수질에 영향이 없다면 공업지역으로 변경을 허용하려 한다”며 “상수원 보호를 위한 노력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수원 수질에 영향을 주지 않을 때라는 전제를 달았는데도 상수원 보호에 손을 놓고 있다며 비난한 것이다. 이 단체는 개발하지 말고 지역 주민을 위해 다른 보상 방안을 찾으라고 하지만 현행법으로는 만족스러운 대책을 찾기 어렵다는 게 담당 공무원들의 설명이다.
환경부 고시 개정안은 서울시와 인천시도 반대하고 나섰다. 상수원 수질이 오염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지자체 내부에서도 너무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도권 지자체 관계자는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오히려 꼼수 개발이 난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공무원들이 모를 리 없다”며 “환경단체가 반대하면 나중에 민원이 들어올 것을 우려해 환경단체 의견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언제부터인가 형성됐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건전한 개발을 위해 서로 의지해야 하는 지자체들조차 무조건 반대만 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천=고윤상/심은지 기자 kys@ha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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