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공무원 106만명 중, 5급 사무관은 1만5000명뿐
정부부처에서는 실무 맡지만 지자체로 가면 과장 직책 부여
정부부처 국·과장 장관까지도 업무처리 과정서 사무관에 의존
산하기관에는 '슈퍼 갑'으로 통해
업무 강도 높고 비교적 급여 낮아…정치권력 간섭도 갈수록 심화
소신 버려야 하는 젊은 사무관들 "공무원하기 힘들다" 자조
[ 임도원/이태훈/성수영 기자 ]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는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은행장들을 불러 예금과 대출 금리 결정까지 주도했어요. 과거 시스템이긴 하지만 그만큼 사무관이 셌다는 얘기죠.”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고위 공무원조차 간섭하지 못하는 현재 방식과 비교하면 당시 정부 부처 사무관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비록 그때만큼은 아니더라도 현재도 사무관들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은 지난 2일 유튜브 생방송에서 “나 같은 정도의 사무관이 (예산) 1조원 정도를 책임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책 수립 과정에서 정치 권력의 개입이 점차 커지면서 사무관들이 소신을 발휘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체 공무원의 1.4%인 1만5000명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전체 공무원(입법·사법부 포함)은 106만 명이다. 이 중 5급 사무관(국가직)은 1만5000명으로, 비율을 따지면 전체 공무원의 1.4%에 불과하다.
시험을 쳐서 사무관이 되기 위해서는 수십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지난해 5급 국가공무원 공개채용시험(행정고시)에서는 284명을 뽑는 데 약 1만1000명이 응시해 40 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9급 시험을 치고 들어와 5급이 되려면 통상 20~30년가량 걸린다. 사무관이 되면 하위 직급과 대우가 확연히 달라진다.
사무관에 임명될 때부터 국새가 찍히고 대통령 직인이 박힌 임명장을 받는다. 해외 직무훈련 대상에 들어가고 대외기관 회의에 기관 대표로 참석하기도 한다. 훈장도 주무관(6급) 이하는 옥조근정훈장이지만, 사무관은 녹조근정훈장을 받는다.
사무관은 실무자이자 관리자이기도 하다. 정부 부처에서는 주로 실무를 맡지만, 지방자치단체로 가면 과장 직책을 부여받는다. 주무관 직급이 도입되기 전에는 주사(主事) 이후 처음 ‘관(官)’의 명칭을 다는 직급이었다. 인사처 관계자는 “1970년대에는 행시에 합격한 20대 사무관이 지역 군수나 부군수로 내려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장관과 1 대 1 토론도
정부 부처 사무관은 국가 정책을 직접 기안하고 집행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만큼 개인이 소관 분야에서 발휘하는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재부 국제금융국에는 딜링룸이 있는데 이곳에 사무관이 혼자 들어가 외환시장을 모니터링하고 한국은행 등에 시장 개입 등을 요청한다”며 “어찌 보면 사무관 한 명이 국내 외환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국·과장이나 장관은 업무 처리 과정에서 담당 사무관에게 크게 의존한다. 신 전 사무관도 2017년 말 적자국채 발행 여부와 관련해 담당 국장과 함께 부총리 보고에 배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0년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담당 사무관과 수산업협동조합 정상화 방안을 놓고 이메일과 전화로 토론을 벌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과장은 “사무관이 사건을 어떤 식으로 처리하겠다고 보고를 올리면 웬만한 간부들은 외압 의혹에 연루될까봐 그 내용에 손대기 어렵다”고 전했다.
정부 부처 사무관은 산하기관에 ‘슈퍼 갑’으로 통한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몇 년 전 소관 부처 공무원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본부장이 젊은 사무관에게 쩔쩔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커지는 정치 권력 개입
사무관들 사이에서는 ‘공무원 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자조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업무 강도는 높으면서 박봉이고, 정부세종청사 근무자들은 서울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사무관은 1호봉 기준으로 월 기본급이 241만원이고, 최고 30호봉도 467만원 수준이다. 한 정부 부처 사무관은 “어차피 일을 많이 할 바에는 돈이라도 많이 벌겠다며 공무원을 그만두고 로스쿨에 가는 사무관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이달 중순에도 한 기재부 사무관이 로스쿨 입학을 이유로 퇴직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 권력의 개입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전 같으면 돈 퍼주기식의 일자리안정자금을 기재부 실무자들이 강하게 반대했을 것”이라며 “정권 차원의 간섭이 점차 늘다 보니 소신을 버리고 영혼 없는 서류 작업을 해야 하는 젊은 공무원들의 자괴감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임도원/이태훈/성수영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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