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식세포 조작해 비판…생명윤리 위반 논란
진화 과정 방해는 反생명적이란 걸 알아야
복거일 < 사회평론가·소설가 >
작년 11월 중국 생물학자 허젠쿠이(賀建奎)는 체외수정으로 태어난 쌍둥이 자매의 유전자를 자신이 편집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CCR5라는 유전자를 불능화하려 시도했는데, 그것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일으키는 HIV가 세포로 들어오는 데 이용하는 단백질을 만든다. 그의 시도는 한 아이에게선 성공했고 다른 아이에게선 실패했다.
그의 발표는 온 세계에 충격을 줬다. 사람을 만들어내는 정보들의 꾸러미인 유전자까지 사람이 쉽게 바꿀 수 있는 세상이 왔다는 사실에 놀라고, 중대한 함의들을 품은 그런 기술을 인도할 윤리적 기준도, 제도적 장치도 없다는 사정에 위기를 느낀 것이다.
그가 이용한 기술은 CRISPR-Cas9이라 불린다. CRISPR(크리스퍼)는 박테리아나 고세균(archaea) 같은 원핵생물의 유전체(genome)에서 발견되는 한 무리의 DNA 염기배열이다. CRISPR는 원핵생물에 침입했던 바이러스의 DNA 조각들에서 나왔으므로, 바이러스를 인식해서 제거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Cas9은 CRISPR를 이용해서 바이러스에 감염됐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효소들인 Cas의 한 종류다.
CRISPR와 Cas로 이뤄진 원핵생물의 면역체계를 조정해서, 생명공학자들은 유전자 편집 기술을 발전시켰다. CRISPR가 발견된 것이 1987년이고 그것이 면역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가설이 나온 것이 2005년이니, 놀랄 만큼 빠른 발전이다.
허젠쿠이의 시술은 전문가들의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명성을 얻을 욕심에서 생명공학자의 윤리를 어겼다는 얘기다. 이 분야에서 모두 받아들이는 윤리적 지침은 ‘생식세포계열은 건드리지 않는다’이다. 체세포에 대한 시술은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므로, 좀 과감한 시술도 그리 위험하지 않다. 생식세포에 대한 시술은 후대들에 영향을 미치므로, 당연히 조심스러워야 한다.
현재 유전자의 기능들에 대한 지식은 초보적이어서, 시술을 시도할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 게다가 이번 시술은 절박한 필요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HIV는 수많은 병원체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고 AIDS의 치료법도 빠르게 발전한다. 병원체 하나 때문에 유전자 하나를 망가뜨리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유전자들은 서로 협력하면서 기능하므로, 한 유전자는 여러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능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CCR5를 망가뜨린 이번 시술로 예상치 못한 부작용들이 나올 가능성은 크고 그런 부작용들은 유전될 수 있다.
이런 비판들은 정당하지만, 실제적 지침들이라는 한계가 있다. 논리적 바탕이 튼실하지 않고 널리 적용되기 어려우리라는 느낌이 든다. ‘유전자에 대한 지식이 충분히 깊어지면, 인간 유전자의 편집도 윤리적이 될 수 있는가?’하는 물음이 당장 나온다. 생명공학에서 근본 기준이 될 만한 지침이, 수학 체계의 공리와 비슷한 무엇이 필요하다.
생명의 원리는 진화다. 생명이 없던 태초의 지구에 생명이 나오도록 하고 40억 년이 지난 지금 온 지구에 풍성하고 다양한 생태계가 자리 잡도록 한 원리가 진화다. 진화의 원리는 워낙 근본적이고 논리적이어서 우주 전체에 작용한다는 ‘보편적 다윈주의’는 이제 모든 학문의 정설이 됐다.
자연히, 생명공학은 진화를 근본 원리로 존중해야 한다. 진화의 결과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진화의 메커니즘인 자연선택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진화의 과정을 방해하는 일들은, 아무리 매력적이라도, 본질적으로 반(反)생명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살필 때, 진화에 가장 적대적인 그래서 가장 반생명적인 생명공학 기술은 인간 복제다. 진화는 다양한 변이 가운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들이 쇠멸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뤄진다. 똑같은 유전체를 지닌 인간 복제는 인류의 진화를 가로막는다.
현실적으로 부정적 영향이 가장 클 생명공학 기술은 영생의 기술이다. 사람마다 무한정 살게 되면(영생하는 인류의 평균 수명이 6000세이리라는 추산이 있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어려워 진화가 실질적으로 멈출 것이다. 누구나 영생을 열망하니, 그런 기술을 막을 수도 없다. 해법이 잘 보이지 않지만 인류의 운명에 관해 성찰하는 화두로서 좋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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