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일 기자 ] 글로벌 주식시장이 침체를 거듭하는 가운데 프로그램 매매를 하는 퀀트펀드 알고리즘들은 손실 경보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투자자들은 이번 하락장을 계기로 주식 비중을 대대적으로 축소하고 있다. 미국 뉴욕증시 S&P500지수의 조정 폭은 여느 때와 같이 10% 내외지만 이번엔 다른 무언가가 투자 알고리즘을 놀라게 하고 있다.
투자 전망을 어둡게 만든 주요 원인은 회사채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몇 년 새 낮은 투자등급 하이일드(저신용 고금리) 회사채 발행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상태다.
작년 10월 이후 회사채시장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비우량 회사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우량 회사채와의 금리 차(신용스프레드)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회사채시장에서 심각한 유동성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작년 초에는 하이일드 채권의 투자 성과가 좋지 않았음에도 수요는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하이일드 채권은 물론이고 이와 비슷한 증권을 사려는 매수자도 찾기 어려워졌다. 은행 건전성 규제도 강화돼 은행들이 예전처럼 채권을 마냥 쌓아둘 수도 없게 됐다.
급등하는 비우량 회사채 금리
이는 단순한 기술적 현상으로만 볼 수 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대다수 주식 투자자들은 회사채시장의 문제점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가오는 경기 사이클의 중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회사채시장의 심각성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주식시장을 논하려면 회사채시장을 점검해야 할 필요성이 높다. 맨그룹은 주식시장의 심리적 요소와 기업의 실물지표 등을 분석한 결과 BBB등급 회사채(하이일드 회사채)시장에 심각한 거품이 있으며, 이는 주식시장 약세에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의 BBB등급 회사채 발행 잔액은 지난해(10월5일 기준) 2조5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2009년 이후 227% 증가한 수치며 투자등급 회사채 전체의 50%를 차지한다.
작년 10월 이전까지 BBB등급 채권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원인은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모두 찾을 수 있다. 높은 수익을 원하지만 정크본드에는 투자할 수 없는 투자자들은 투자적격 채권 중 가장 신용도가 낮고 이자가 높은 BBB등급 채권으로 몰렸다. 일각에선 BBB등급 채권 거품이 제2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일으킬 것이라는 주장까지 내놓는다. 2008년엔 모기지 채권이었고, 지금은 BBB등급 채권이다.
제2 금융위기 촉발할 수도
모건스탠리 분석에 따르면 지금까지 세 번의 회사채 등급 하락 주기(1989~1991년, 2000~2003년, 2007~2009년)가 있었는데, 이 기간에 투자등급 채권 중 7~15%는 하이일드 등급으로 강등됐다고 한다. 향후 몇 년에 걸쳐 3500억달러 규모 이상의 회사채 등급이 하락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 회사채시장에서 유통되는 채권의 50% 이상이 BBB등급이다. 2000년엔 하이일드 채권 비중이 25% 남짓한 수준이었다. 등급이 하락할 수 있는 회사채 규모 예측이 오히려 과소평가된 것일 수도 있다. 모건스탠리는 1~2년 안에 등급이 하향 조정될 회사채 물량이 1조달러를 넘어설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신용리스크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채무불이행 위험이 시장 참여자들이 그동안 경험한 수준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지난 수십 년간 중앙은행은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시장에 개입했음에도 채무불이행 주기가 돌아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정리=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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