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갑 기자 ] 라틴아메리카의 현대미술은 자유로운 상상력 구현과 함께 현실과 꿈, 사회와 신화의 공존을 추구하는 매직 리얼리즘(마술적 사실주의)으로 대표된다. 콜럼버스 이전의 원주민 문화는 물론 유럽으로부터의 독립, 혁명으로 촉발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욕구 등 문화적으로 다양한 스토리를 담아내 국제 화단에서 독자적 영역을 구축했다.
중남미 작가들의 작품을 비교해볼 수 있는 이색 전시회가 마련됐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오는 24일까지 이어지는 ‘라틴현대미술’전이다. 새해를 맞아 ‘희망과 판타지’를 테마로 펼치는 이 전시회에는 남미의 꿈과 현실을 색채미학으로 묘사한 카를로스 콜롬비노(파라과이), 페르난도 토레스 세바요스와 모니카 사르미엔토 카스티요(에콰도르), 크리스티나 누녜스(베네수엘라), 빅토르 페르난데스(아르헨티나)의 근작 30여 점이 걸렸다. 그동안 유럽, 미국 미술에만 편중돼 접하기 어려웠던 라틴아메리카의 미술 문화에 흠뻑 빠져볼 기회다.
작가들은 신화, 종교, 신비와 함께 민속문화에 뿌리내린 리얼리즘의 세계를 중남미 특유의 강렬하고 환상적인 색채로 보여준다. ‘라틴 미술계의 거장’ 콜롬비노는 목판화 인쇄기법을 활용한 그림 넉 점을 걸었다. 심장, 비, 얼굴 등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대상을 나무에 새기고 깎아낸 뒤 염료와 물감을 입힌 작품들이다.
세바요스는 주변 사람들의 활력있는 삶과 생활을 현란한 색감으로 묘사한 작품을 고루 걸었다. 그는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이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자연과 휴머니티에 기반을 둔 라틴 정신세계를 대변해 왔다. 구상과 추상의 오묘한 조화를 꾀한 작품들은 세련되면서도 은은한 색감으로 신비스럽게 다가온다.
프랑스와 스페인을 오가며 활동하는 카스티요는 중남미의 선사 문화와 자연에 뿌리를 둔 인간의 삶을 아기자기하게 그린 작품을 냈다. 화면에 잎사귀 모양을 재연하듯 라틴아메리카에서 자주 거론되는 현대 조형성에 공예를 접목하는 방법으로 선사문화의 순수하고 건강한 마음을 반영했다. 카스티요는 작품을 통해 현대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순수한 자연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유럽 미국 아시아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누녜스는 백합, 주전자, 화병 등 다양한 소재를 색채미학으로 변주한 정물화를 내놨다. 생기 넘치고 역동적인 색채 앙상블을 통해 감정을 숨기거나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원초적으로 드러낸 게 이채롭다.
김경갑 기자 kkk10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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