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동물원 찾는 獨 기술자들

입력 2019-01-09 18:09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 김낙훈 기자 ] 개미의 적은 개미핥기다. 긴 혀에 있는 끈끈한 타액으로 개미를 핥아먹는다. 날카로운 발톱은 개미집을 부수는 공포의 무기다. 개미핥기를 응용해 제품화한 기업이 있다. 독일 남서부 온천도시 바덴바덴에 있는 굴착기 삽 업체 렌호프하르트슈탈이다. 1960년에 창업한 이 회사는 종업원 170여 명의 중소기업이다.

건축공사장에서 암반이 나오면 발파 작업을 한다. 이 과정에서 파편 충격 소음 먼지 등이 생긴다. 이를 굴착 방식으로 전환할 수 없을까. 이를 고민하던 이 회사 기술자들은 동물원의 큰개미핥기를 연구했다. 그 결과 날카로운 발톱처럼 생긴 큰개미핥기의 발바닥 구조가 땅을 파는 데 효과적임을 알아냈다. 이를 닮은 굴착기 삽을 개발했다. 총 용적이 7% 줄어 자재 사용을 감축한 것은 물론 견고함까지 더했다. 강도 높은 암석 파괴나 겨울철 얼어붙은 바닥 굴착에 효과가 있음이 입증됐다. 이 제품은 굴착기 삽의 표준으로 통할 정도다.

개미핥기 모방 굴착기삽 히트

독일 기업들은 동물 연구에 열심이다. 슈투트가르트 부근 에슬링겐에 있는 페스토 역시 마찬가지다. 공장자동화 업체인 이 회사는 자체 메커트로닉스 기술에 동물 연구를 접목해 해파리로봇 개미로봇 거미로봇 박쥐로봇 갈매기로봇 캥거루로봇 등을 개발했다.

이 중 해파리로봇은 해파리처럼 유연하게 수영한다. 거미로봇은 기어가다가 경사로가 나오면 몸을 둥글게 말아 굴러간다. 개미로봇은 서로 소통하며 협업할 수 있는 로봇이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플라스틱과 금속, 세라믹 소재로 제작됐다. 눈에는 3차원 스테레오 카메라, 어깨엔 7.2V 전지, 배에는 추적용 위치확인시스템(GPS) 수신기가 달려 있다. 이를 스마트공장에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코끼리코로봇도 개발했다. 일반 로봇은 6축 등 관절 수에 제한이 있지만, 이 로봇은 코끼리 코를 모방해 훨씬 자유롭게 움직인다. 물건을 집어서 이동하는 공정에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

이른바 ‘생체공학적 로봇(bionic robot)’이다. 동물은 사람처럼 생체공학적 강점을 지니고 있다. 이를 연구하면 효과적인 로봇을 개발할 수 있다.

동물은 신제품 아이디어 산실

독일 기업은 주로 산학연 협력을 통해 이런 연구를 하고 있다. 렌호프하르트슈탈은 쾰른전문대 등과 공동으로 이를 수행했다. 알프레트 율리히 쾰른전문대 건축기계연구소 교수를 비롯해 박사급 연구진과 연구원 등 모두 16명이 참여했다. 페스토는 뮌헨공대와 공동으로 개미로봇을 스마트공장에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기업인의 가장 큰 고민은 미래 먹거리 발굴이다. 해결 방안 중 하나는 동물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다. 동물 연구는 건축에도 활용된다. 기존 건축물 중엔 동물 집을 응용한 디자인도 여럿 있다. 새집을 응용한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이 대표적이다. 동물 집은 건축가들이 관심 갖는 분야 중 하나다. 몸길이 4.5㎜의 성당흰개미가 지은 집 중엔 높이가 10m에 이르는 것도 있다. 타워크레인이나 포클레인 없이 입으로 자재를 물어다 짓는다. 이를 170㎝인 사람 키로 환산하면 3777m에 이른다. 인간이 건설한 건축물 중 가장 높은 부르즈칼리파(828m)의 네 배가 넘는다.

동물 연구를 통해 신제품을 개발하는 일은 기업인 혼자 해결하긴 힘들다. 산학연 협업이 중요한 까닭이다. 새해에는 기업인들과 기술자, 학자들이 함께 동물원에 가서 미래 먹거리를 구상하면 어떨까.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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