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검찰의 시중은행 채용 비리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이뤄진 이후 국내 주요 은행의 은행장 중 처음으로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은행의 공공성을 고려해 이 전 행장의 죄책이 무겁다고 판단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9단독 이재희 판사는 10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 전 행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하고 도망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법정구속했다.
이 전 행장은 주식회사의 경우 독자적인 인재상을 추구할 수 있는 재량이 인정된다며 채용 비리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그의 채용 절차 관여 행위가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공채 과정에서 불합격권에 있는 지원자를 합격자로 만든 것은 은행장의 재량을 넘어섰다고 본 것이다.
특히 재판부는 은행 자체가 공공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우리은행이 가지는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면 은행장의 재량권이 무한으로 확대될 수 없고 한계가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우리은행이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이지만, 다른 사기업과 달리 금융감독원의 감독을 받고 금융위기가 오면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등 공공성이 일반 사기업보다 크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우리은행은 지원자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공정한 경쟁 과정을 통해 채용하겠다는 의미로 학력, 연령, 성별 제한이 없다고 하면서 '탈스펙'을 내세웠다"며 "하지만 사회 유력인이나 고위 임직원을 배경으로 둔 것이 새로운 스펙이 됐다"고 질타했다.
법원에 따르면 우리은행의 채용 비리는 이 전 행장과 인사·채용팀 관계자들의 공모를 통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우리은행은 2015~2017년 채용 절차에서 대체로 서류전형 중 학점 3.0 미만, 30세 이상 고졸을 제외하는 필터링을 진행했다. 필터링에서 구제된 서류 합격자 14명 중 12명이 청탁 대상자였다. 우리은행은 당시 청탁 대상자들의 자기소개서를 선별적으로 검토한 후 서류전형에 합격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전 행장은 '추천인 현황표'에서 특정인을 선별해 '동그라미'를 쳐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했다. 사실상 이 전 행장의 동그라미를 받은 지원자는 합격까지 인사팀의 관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인사팀은 청탁 대상자들의 면접점수를 변경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은행장의 의사결정만으로 바로 추가합격 된 것이기 때문에 이 전 행장이 우리은행의 채용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전 행장의 채용 지시가 법원에서 업무방해로 인정되고 주요 은행장으로는 처음으로 실형이 선고된 만큼 채용 비리 혐의로 기소된 다른 은행에 대한 향후 판결에도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해 검찰은 주요 은행인 국민·하나·우리은행과 지방은행인 부산·대구·광주은행의 채용 비리 의혹을 수사했다. 검찰은 12명을 구속기소 하고, 26명을 불구속으로 기소했다.
이중 부산은행 성세환 전 은행장, 대구은행 박인규 전 은행장, 하나은행 함영주 은행장, 우리은행 이광구 은행장 등 4명의 은행장이 재판에 넘겨졌다. 박인규 전 은행장은 지난해 9월 대구지법에서 채용 비리 등의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에 실형을 선고받았다.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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