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훈의 기업인 탐구
[ 김낙훈 기자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독일의 ‘히든 챔피언(글로벌 강소기업)’ 중에는 생산시설 및 연구개발에 투자를 늘린 기업이 많았다. 경기는 불황과 호황이 반복되는 속성이 있는 만큼 불황기에 호황을 대비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경기 시화산업단지의 대모엔지니어링과 판교의 마이크로디지탈도 마찬가지다. 올 들어 글로벌 시장공략을 강화하는 이들 기업의 대표를 만나봤다.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는 마이크로디지탈(사장 김경남·51)은 종업원 45명에 작년 매출 약 50억원을 기록한 중소기업이다. 하지만 이 회사의 해외판매망은 30개국 50개에 이른다. 여기엔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 딜러들도 포함돼 있다. 김경남 사장은 “올해 말까지 해외 대리점을 50개국 100개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딜러 중에는 미국 굴지의 의료용 진단키트 제조업체인 CTK도 들어 있다. 김 사장은 “CTK는 2년 가까이 우리 제품을 테스트한 뒤 미국 내 판매를 맡기로 지난해 결정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LMS도 작년부터 마이크로디지탈 제품의 일본 내 독점판매를 담당하고 있다. 일본 선두권의 바이오 장비 및 시약 유통업체다. 김 사장은 “일본 업체는 미국보다 더 까다로워 3년 정도 우리 회사 제품을 테스트했다”며 “심지어 완전분해해 성능을 검사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왜 굴지의 미국·일본 업체가 한국 중소기업 제품의 판매에 나섰을까. 마이크로디지탈은 바이오 및 메디컬 분야의 측정·분석장비를 제조하는 업체다. 주력 제품은 바이오 분석장비인 ‘나비(Nabi)’와 메디컬 분석장비인 ‘다이아몬드’다. 이 중 나비는 극소량의 시료를 사용해 바이오 물질의 정량 성분을 분석하는 장비다. 유전자 분석, 단백질 정량, 세포 농도 측정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 예컨대 사스나 메르스 등의 질병 감염 여부를 알아볼 때 DNA(유전자) 검사가 필수다. 김 사장은 “이때 1마이크로리터(1L의 100만분의 1) 수준의 시료만으로도 DNA 검사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우리가 생산하는 제품은 모두 국내에서 처음 개발된 것”이라며 “이때 글로벌 장비업체보다 다섯 가지 강점이 있는지를 생각해 국산화한다”고 말했다. 성능이 선진제품과 적어도 동등한지, 새로운 기능을 두 가지 이상 갖추고 있는지, 사용방법이 간편한지, 모듈화를 통해 손쉽게 애프터서비스할 수 있는지, 가격이 30% 이상 싼지 등이다. 그는 “이런 강점 덕분에 해외 유명 업체들이 우리의 딜러로 나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주력제품인 다이아몬드는 면역질환을 일으키는 ‘바이오 표지자(biomarker)’의 정량 검사장비다. 혈청 등 시료의 발광과 흡광을 측정해 면역검사를 하는 장비다.
김 사장은 서울대 공대를 중퇴하고 미국 버클리대(학사)와 노스웨스턴대(석·박사)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미국 로렌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 연구원과 세계적인 반도체장비업체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의 개발부장을 거쳐 창업했다. 그가 2002년 회사 설립 후 세운 목표는 ‘글로벌 기업이 장악한 바이오·메디칼 측정장비의 국산화’였다. 그동안 20여 종의 제품을 개발했다. 그는 “이는 모두 국내에선 처음 선보인 것들”이라며 “국내 기업들이 안 하는 분야에서 승부를 거는 게 우리 회사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발명특허를 포함한 지식재산권은 약 40건에 이른다.
그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리는 국제의료기기전시회(메디카)를 비롯해 두바이의 메드랩 등 굴지의 국제의료기기전시회에 매년 4~5회 출품한다. 이를 통해 바이어들에게 자사 제품을 알리고 네트워크를 맺는다. 신제품은 독자 개발하는 것도 있고 서울대·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등과 산학협력을 통해 제품화하는 것도 있다.
이 회사는 올해 말까지 ‘소형으로 자동화된 현장 정밀진단장비’도 개발할 계획이다. 김 사장은 “면역진단 소요시간과 시약 사용을 줄인 제품”이라며 “병원 응급실, 보건소 등에서 신속하면서도 간편하게 원하는 검사를 할 수 있는 장비로 내년부터 시판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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