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의 부인…구속영장 청구 가능성 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밤 14시간 30분가량의 검찰 조사를 마치고 귀가했다. 대한민국 사법부 71년 역사상 첫 전직 대법원장 피의자 신분 검찰 조사였던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실무진이 한 일을 알지 못한다" 등의 답변으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 개입, '판사 블랙리스트' 관여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에 선 인물이다. 전날 검찰 출석 전 대법원 정문 기자회견을 통해 도의적 책임은 인정하지만, 형사적 책임은 부인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날 검찰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으로 꼽히는 일제 강제징용 재판거래 의혹을 조사한 뒤 법관 블랙리스트,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 사건 재판개입 의혹에 대해 캐물었다. 또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가 징계 위기에 놓였던 김기영 헌법재판관 관련 사안도 물어봤다.
양 전 대법원장은 11일 오전 9시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곧바로 인근의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오전 9시 30분부터 조사를 받았고, 밤 11시 55분께 검찰청사를 빠져나왔다.
조사를 마친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검찰 포토라인을 지나칠 때와 마찬가지로 굳게 입을 다물고 귀가 차량에 올랐다.
취재진이 "(오전 기자회견에서) 편견·선입견 없는 시각에서 사건 조명됐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검찰 수사가 그렇다고 보나", "김앤장과 강제징용 재판을 논의했다는 문건 나왔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의 질문을 던졌으나 묵묵부답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조사 시작 11시간이 지난 오후 8시 40분께 피의자 신문을 마친 뒤 3시간가량 신문 조서에 담긴 자신의 진술을 검토했다.
대법원 회견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모쪼록 편견이나 선입견 없는 공정한 시각에서 이 사건이 소명되기를 바랄 뿐"이라며 '편견', '선입견'이란 단어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여기에 검찰은 "편견 없이 수사하겠다"고 응수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르면 이번 주말 다시 검찰에 출석할 전망이다. 두 번째 소환부터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조사를 모두 마친 뒤 진술 내용 등을 분석해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증거 인멸 우려 등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식사·휴식·조서 검토 시간을 포함한 양 전 대법원장 조사 시간은 약 14시간으로 전직 대통령을 포함한 주요 인사들의 조사 시간보다 짧은 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은 21시간가량 검찰청사에 머무르다 귀가했다. 두 전직 대통령이 소환 조사를 마친 뒤 검찰청사를 빠져나온 시간은 다음 날 오전 6시가 넘어서였다.
한 번에 마무리 짓는 '끝장 조사' 대신 여러 차례 불러 조사하는 '살라미 조사' 방식을 예고했다. 검찰의 이런 변화에는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과정에서 법원을 중심으로 검찰 수사방식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 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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