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전 8시50분. 철통 호위를 한 검은색 차량이 베이징에 있는 중국 제약회사 동인당(同仁堂·퉁런탕) 공장 앞에 멈췄다. 차량에서 경호를 받으며 나온 인물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지난 7일부터 3박4일 간 이어진 방중 일정 마무리를 앞두고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제약사 공장을 전격 방문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에선 '우황청심환'을 만드는 중국 제약사로 알려진 동인당은 350년 전인 1669년 청나라 강희제 때 설립된 중국의 대표적 '라오쯔하오' 기업이다. 라오쯔하오란 중국 정부가 오래되고 명망을 쌓은 브랜드(기업)에 주는 인증제도다. '백년 기업'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베이징 동인당 공장은 중국 내 일류 제약 생산기지로 중국 고위 관리들도 단골로 시찰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김 위원장이 베이징 동인당 공장을 방문한 것을 두고 북한 산간에 약초가 많은 점을 고려해 약초 산업을 현대화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 아니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의 동인당 방문으로 잊혀가던 중국의 라오쯔하오 기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초기에는 1만여개에 달했지만 현재는 1128개 밖에 남아 있지 않다. 대부분의 회사가 장기 적자를 면하지 못하는 등 시대 흐름에 밀려 사라졌다. 살아남은 라오쯔하오의 평균 존속 기간은 160년 정도다.
그러나 최근 중국에서 라오쯔하오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젊은 소비자들을 겨냥해 무인점포를 열거나 온라인 판로 개척 등을 시도하며 변신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 "과거를 묻지 마세요"…월병 전문점 '다오샹춘'의 변신
1895년 설립된 월병 전문점 '다오샹춘(도향촌)'은 변신을 통해 살아남은 라오쯔하오 기업이다.
다오샹춘은 기존 점포와 완전히 다른 콘셉트의 디저트 가게 '다오톈르지(도전일기)'를 지난해 8월 오픈했다. 기존 중노년층에게 익숙한 시그니처 디저트 대신 젊은이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깜찍한 모양의 디저트를 내세웠다.
기존 브랜드를 연상시킬 수 있는 회사명은 전략적으로 감췄다. 회사 관계자는 "다오톈르지는 오픈 시점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베이징 다오샹춘 산하의 기업이라는 사실을 알린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색 디저트와 함께 중국 분위기를 풍기는 도자기로 만든 식기, 깔끔한 인테리어 등으로 시각적인 부분을 중요시하는 젊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가오픈 기간 매장 앞에 대기줄이 생길 정도로 고객들의 열기가 뜨거웠다.
온라인 판로 개척 효과도 톡톡히 봤다. 다오샹춘은 2014년 타오바오와 징둥의 전자 상거래 플랫폼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설립해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이로 인해 베이징 지역에만 제한됐던 구매자가 전국으로 확산됐다. 인터넷 구매가 익숙한 70~90허우((1970년대~1990년대 출생자)들 사이에서 인기다.
실제로 다오샹춘은 2016 징둥 플랫폼에서 매출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고, 2017년에는 무려 33배나 늘었다. 2017년 온라인 매출액은 7억위안(약 1157억원)으로 회사 총 매출액의 2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청나라 황실 환약을 집에서…동인당의 O2O 서비스
김 위원장이 이번 방중 일정 중 방문해 잘 알려진 동인당은 온·오프라인 연계(O2O) 서비스를 강화했다. 2015년 중국 최대 약품 전자상거래 플랫폼 이야오왕에 최초로 브랜드관을 개설하고 온라인 판매와 함께 오프라인 매장 내진 서비스를 실시했다.
온라인에서도 의사를 통해 의료 상담과 처방을 받을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경우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진료부터 조제약 배달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받아볼 수 있다. 또 온라인에서 약을 구매하면 근처의 동인당 매장에서 직접 오프라인 내진도 받아볼 수 있어 인기다.
매출 기여도가 낮은 3~4선 도시 소비자들을 위해 이같은 서비스를 선보인 것으로 보인다. 회사 관계자는 "우리는 지금 시대 흐름에 맞춰 함께 발전하고 있다"며 "온라인 편리성과 오프라인 체험성을 결합해 고객이 원스톱 건강 상담과 서비스,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인당의 실적 또한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5년 매출액은 108억위안(약 1조7800억원), 2016년에는 121억위안(약 2조원)으로 매년 10% 수준의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 자존심 버린 '스마트 경영'…무인점포로 날개 달았다
무인점포를 도입해 살아남은 라오쯔하오 기업도 있다. 1921년 설립된 우팡자이는 중국인들이 명절인 단오절에 즐겨 찾는 전통 먹거리인 쭝쯔(대나무 잎에 싼 찹쌀밥으로 단오절 전통음식) 제조업체다. 지역에서 유서 깊은 브랜드로 인기가 높지만 지난해 1월 항저우에 24시간 스마트 점포를 열었다.
이곳을 방문한 고객들은 스마트폰앱 또는 매장 내에 설치돼 있는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을 할 수 있다. 모바일을 통해 음식 수령을 시간을 정할 수 있으며, 대기 시간 및 수취 알림 등을 받아볼 수 있어 편리하다. 스마트폰을 들고 가 자동 인식기에 갖다 대면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우팡자이에 따르면 무인점포 1호점은 첫 오픈 이후 5개월 동안 방문객이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늘었다. 1인당 매출 역시 4배 이상 올랐고 매장 객단가도 14.5%가량 증가했다. 무인점포 운영을 통해 인건비도 줄일 수 있었다. 기존 매장 대비 연가 42만위안(약 7000만원)의 인건비가 절감된다는 분석이다. 고객들을 대상으로 수집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메뉴를 추천하는 기능 역시 매출을 올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오팡자이는 중국 전역 고속도로 인근에 24시간 무인점포를 확대할 계획이다. 우다싱 회장은 "앞으로 우팡자이는 무인식당 모델을 중국 전역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