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법원과 변호인 이야기

입력 2019-01-13 17:26   수정 2019-01-14 09:23

김현 <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hyunkim@sechanglaw.com >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유명한 미국 작가 아서 밀러의 희곡 《시련》은 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벌어진 마녀재판을 소재로 한다. 애비게일 등 소녀들은 숲에서 금지된 놀이를 한 것에 벌을 받을 것이 두려워 마법에 걸린 것처럼 연기한다. 그들의 거짓말은 마을 사람들 각자의 이익에 이용되면서 진실로 탈바꿈한다. 고발자는 결백한 것으로 간주되고, 선량한 피고발자는 죄인이 돼 살기 위해선 양심을 팔고 거짓 자백을 해야 한다. 주민들은 악마에 맞서 싸운다는 명분으로 저마다의 욕구 불만을 속죄양에게 퍼붓는다. 마녀재판은 정의의 이름 아래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재판에서 마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는 배제된다.

역사는 반복된다. 1950년대 전반 미국 내 공산주의자를 색출하자는 매카시즘의 광기가 미국을 강타한다. 마녀사냥은 양심적인 사람들을 하나씩 파멸시킨다. 사회도 도덕적으로 마비된다. 아서 밀러도 ‘시련’의 줄거리를 통해 매카시즘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는다.

1692년 마녀재판의 핵심 요소는 ‘공정한 법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검찰권은 행정부 권력의 일부여서 시대의 흐름과 여론에 영향받을 수 있다. 그러나 법원은 다르다. 엄정하게 중립적으로 피고인의 주장을 경청할 의무가 있다. 검찰 기소를 그대로 받아들여 유죄를 선고할 준비가 돼 있거나, 권력층의 의중이나 대중의 여론을 미리 가늠해 유무죄를 저울질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 요소는 ‘변호인이 없다’는 점이었다. 소설의 주인공 프록터는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고발하는 일을 거부한다. 대신 자신이 죄를 뒤집어쓴 채 처형된다. 유능한 변호인이 프록터를 도와 그가 억울하며 고발자가 불순한 동기를 가지고 있고, 유죄의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조목조목 변론했다면 아마 다른 판결이 나왔을 것이다. 중이 제 머리 깎지 못하는 법이다. 냉철한 사람이라도 본인의 재판에서는 마음이 떨려 침착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 변호인의 조력이 필요한 이유다.

‘공정한 법원’과 ‘변호인의 존재’는 이상적 사법체계를 만드는 골간이다. 우리 사회가 국민이 의지하는 사법제도를 갖게 된 역사는 70년밖에 안 된다. 사법의 역사가 깊은 선진국에 비해 덜 안정된 것은 사실이다.

우리 협회의 변호사들도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밖에서 볼 때는 미흡한 점이 많다고 한다. 새해엔 ‘더 공정한 법원’과 ‘좋은 변호인의 존재’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밝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기여했으면 하는 게 필자의 ‘기해년 바람’이다. 약자를 어떻게 도울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이루고, 사회에서 공정함도 정착되고, 경제도 번영하고, 남북한 관계도 진전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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