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갑 기자 ]
추상화가 김수수 씨(사진)가 15~21일 서울 세종대로 조선일보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중국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을 졸업한 김씨는 사막의 신기루처럼, 용광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의 기운’을 화면에 시각화하는 데 주력해 왔다. 대형 화면에 검은색과 흰색을 대비하거나, 적색과 청색 등 서로 다른 색조의 긴장과 이완을 통해 화기(火氣)가 느껴지는 오방색 추상세계를 열었다. 작년에는 국내 대표적 공모전인 단원미술제 본상과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을 거푸 수상하며 ‘화단의 샛별’로 떠올랐다.
‘침묵의 언어’를 테마로 한 이번 전시에는 용광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의 기운’을 오묘한 실루엣으로 잡아낸 색면추상화 50여 점을 건다.
김씨는 회화에 담아온 작품의 내용과 메시지를 의외로 ‘일상 삶이 지닌 본연의 숭고함’에서 찾는다. 작가는 2017년 여름 신문 기사를 읽다가 엄청난 불길을 마주하며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꽂혔다고 한다. 순간 묘한 흥분이 일어 무작정 사진 속 장소를 찾아 나선 그는 제철소 고로에 도착해 정신없이 사진을 찍다가 어느 순간 손을 멈췄다. 단단하던 쇳덩이들이 어느새 물처럼 녹아내려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장면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작업실로 돌아온 그는 2m가 넘는 대형 붓을 만들어 들끓는 불의 이미지를 한 번의 붓질로 덮는 ‘전면일필법(全面一筆法)’으로 화면을 채워나갔다. 온갖 감정으로 때 묻고, 많은 관계 속에 상처받으며, 수많은 시행착오로 얼룩진 우리 삶도 일순간에 덧없이 사라질 것이란 생각을 붓끝으로 풀어냈다. 수없이 바탕색을 칠하는 행위를 반복했고, ‘노동의 소중함’도 화면에 빼곡히 담아냈다. 그의 이런 ‘불’ 연작을 화단에서는 ‘후기 단색화’란 이름으로 불렀다.
평론가 윤진섭 씨는 “김씨의 작품은 적, 청, 황, 흑, 백 등 오방색이 화면에서 다양한 변주를 이루고 있어 단일한 색을 다룬 전기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과는 차별화된다”며 “그가 사용하는 오방색은 ‘빛의 변주’라는 사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평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