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금 보증금 제로 시대…명동 상가서도 빈 손 퇴장” 2009년 초 기사 제목이다. 당시만 해도 자기가 가게에 들어올 때 냈던 권리금을 신규 임차인에게 받지 못하고 폐업을 선택한 임차인이 그야말로 뉴스가 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런 제목의 기사는 유효하지 않다. 10년간 자영업자 수의 계속적인 증가와 경기 불황 장기화로 권리금을 받지 못하고 가게 문을 닫는 임차인의 존재가 그야말로 ‘뉴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권리금이 법정에선 오히려 나날이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더 이상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나가라고 하면 임차인이 내가 받을 수 있었던 권리금만큼을 금전으로 배상하라고 맞서는 양상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 4로 권리금 제도권 안으로 편입
임차인이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은 정부가 2015년 제정한 상가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 4이다. 이전까진 임차인이 가게에 들어오면서 이전 임차인에게 건넨 권리금은, 법적 보호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임대인과 무관한 계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보호를 위해 정부가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 바로 위 조항이다.
조항의 내용은 이렇다. 임대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임대차 종료시까지 기존임차인이 데려온 신규임차인과 임대차계약 체결을 거절하는 등의 방법으로 기존임차인의 권리금 계약을 방해하면 권리금 상당액의 손해를 임차인에게 배상해야 하는 것이다.
조항 악용 가능성…정부는 임차인 권리 강화하는 법 개정 추진
문제는 기존 임차인이 신규 임차인을 직접 찾는 것이 어렵고(임대인이 신규임차인과 권리금 계약을 주선했을 경우 임대인에겐 권리금 보호 의무가 없다) 실제 적정한 권리금 계약 체결까지 성공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법을 악용해 허위의 신규 임차인을 찾아 권리금 계약서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임대인에게 권리금을 요구하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 임대인의 퇴거 요구로 계약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점포에 투입한 각종 시설비나 인테리어 비용조차 받지 못하고 쫓겨날 위기에 처한 임차인들이 궁여지책으로 이런 허위 소송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허위의 권리금 계약서는 법정에서 들통 나는 경우가 많다. 권리금 소송을 위해 허위의 신규 임차인을 급히 구해온 터라 조사해보면 신규 임차인이 보증금을 낼 자력조차 없거나 음식점 자리에 미용실을 하겠다는 등 업종이 전혀 달라 계약의 진위가 의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조항을 악용하는 것은 임대인들도 마찬가지다. 임차인이 어렵게 신규 임차인을 구해 권리금 계약까지 성사시켰어도 예외조항을 이용해 빠져나가는 것이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 임대인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장해주지 않아도 되는 경우는 크게 7가지인데 이중 실제 소송에서 임대인들이 주장하는 80%가 건물이 안전상의 목적 등으로 재건축 예정에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설 안전진단기관에서 건물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등의 보고서를 만들어오는 것이다. 드물지만 1년6개월 이상 건물을 영리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후 슬그머니 임대인이 들어가 장사를 이어나가는 경우도 왕왕 있다.
정부는 일단 재건축 예정이라는 예외 조항을 들어 임차인에게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장하지 않으려는 임대인을 막기 위해 임대인이 건물 철거나 재건축을 이유로 임대차계약을 거절할 경우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우선입주요구권이나 퇴거보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할 예정이라고 14일 발표했다.
실제 권리금 소송에서 손해 보지 않으려면
그렇다면 이 권리금 회수 기회 보장 조항이 실제 소송에선 어떻게 적용되고 있을까.
서울의 30년이 넘은 오래된 상가건물을 매수한 A씨는 최근 예상치 못한 송사에 휘말렸다. A씨는 건물 매수 이후 이 건물에서 고시원을 운영 중이던 B씨에게 건물을 재건축할 예정이니 임대차계약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는데 B씨가 신규임차인과의 권리금 계약을 못하게 됐다며 권리금 약 3억 원가량을 임대인 A씨에게 배상하라고 소를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B씨가 자신의 권리금 계약이 허위가 아님을 증명하겠다며 증인으로 신청한 신규임차인 C씨는 끝내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마도 위증죄가 두려워서였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결과는 역시 임차인의 패소였다.
결국 권리금 소송에서 임대인이라면 무엇보다 임차인의 허위 계약 가능성을 면밀히 살펴보고 허위임을 소명할 정황증거를 제출해야 할 것이다. 또 임차인이 신규임차인에 대한 정보 제공 의무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음을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임차인이라면 임대인이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장해주지 않아도 되는 예외 조항을 거꾸로 악용하고 있는 경우는 아닌지를 살펴봐야 한다. 실제 재건축 예정인 것이 맞는지 건물의 위험진단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맞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임차인의 경우 여러 관문을 넘어 권리금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가 인정되더라도, 권리금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가 인용되면, 기존에 민법상 인정되는 시설투입비 상당의 유익비상환청구권이나 부속물매수청구권은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통상 권리금에는 시설투입비 같은 유무형의 자산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법원의 일반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권리금과 비용청구권 중 금액이 큰 쪽을 택해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정혜진 < 법무법인(유한) 로고스 변호사 >
△ 고려대 교육학과
△ 전 동아일보 기자
△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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