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이트 독주 막아라"…오비맥주, 내달 발포주 '필굿' 내놓는다

입력 2019-01-16 17:26  

불경기에 커지는 발포주 시장

맥아 함량 비율 10% 미만…주세, 출고원가 30%만 적용
일반 맥주보다 출고가 522원↓

하이트진로, 국내 발포주시장 장악
필라이트, 1년 반새 4억캔 팔려

발포주만 50여종에 달하는 日선 콩·옥수수 '新장르 맥주'도 나와



[ 김재후 기자 ] 맥주업계 1위 오비맥주가 2위인 하이트진로가 장악하고 있는 국내 발포주(發泡酒·유사 맥주) 시장에 전격 진출한다. 관련 제품은 설 직후 내놓는다. 발포주는 맥주의 주원료인 맥아(麥芽)의 함량 비율이 10% 미만인 술로, 일반 맥주보다 주세(酒稅)가 낮아 가격이 저렴하다는 특징이 있다. 가격이 싸기 때문에 불경기에 잘 팔려 일본에선 이미 인기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16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오비맥주는 설 연휴가 끝난 직후 발포주 ‘필굿’(FiLGOOD)을 출시한다. 맥아 비율은 9%가량, 알코올 도수는 4.5도이다. 초도 물량으로 20만 개 의 박스(24개 기준)를 준비하고 있다. 오비맥주의 발포주 시장 진출로 국내 발포주 시장은 업계 1~2위 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낮은 가격 무기로 맥주시장 잠식

오비맥주가 뒤늦게 발포주 시장에 뛰어든 것은 국내 발포주 시장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내 발포주 시장은 하이트진로가 2017년 4월 ‘필라이트’를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맥주는 출고원가의 72%에 대해 주세가 붙지만, 발포주는 ‘기타 주류’로 분류돼 주세는 출고원가의 30%만 적용된다. 판매가격을 그만큼 낮출 수 있다. 필라이트는 출시 1년6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4억 캔(355mL 기준) 이상을 판매했다. 국내 발포주 시장 규모는 연 200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올해도 경기가 좋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가격이 싼 발포주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오비맥주는 기존 시장이 수입맥주 등에 잠식당하고, 성장하는 발포주 시장에선 하이트진로의 독주를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는 판단이다.

일본 닮아가는 한국 맥주시장

발포주의 고향은 일본이다. 일본에서 경기 불황을 뜻하는 ‘잃어버린 10년’ 기간인 1990년대 중반에 등장했다. 1995년 일본의 전체 맥주시장에서 2.5%에 불과했던 발포주 시장은 2016년 13.7%까지 커졌다. 현재 일본에서 출시된 발포주만 50종이 넘는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일본에선 이미 밖에서는 맥주를 마시지만, 퇴근할 땐 발포주를 사 집에서 한 잔씩 하는 게 보편화됐다”며 “한국도 이런 전철을 밟아가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일본에선 발포주 외에 ‘신장르 맥주(제3맥주)’도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 신장르 맥주란 맥주의 주원료인 맥아를 전혀 쓰지 않고 콩과 옥수수 전분 등을 원료로 만들거나, 맥아를 원료로 제조한 증류주와 발포주를 섞어 만든 제품이다. 역시 높은 주세를 피할 수 있어 저렴하다. 지난해 일본 전체 맥주시장에서 33%를 차지했다.

‘베끼기’ 논란도

오비맥주의 발포주 시장 진출을 놓고 업계에서 ‘말 뒤집기’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오비맥주는 하이트진로가 필라이트를 출시할 당시 “맥주회사가 맥주를 팔아야지, 결국 제 살을 깎아먹는 일이 될 것”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당시 하이트진로가 발포주를 내놓자 오비맥주는 ‘맥주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며 “지금도 그때와 상황이 달라진 건 없다”고 전했다.

특히 오비맥주가 뒤늦게 뛰어들면서 자사 발포주 이름을 경쟁사인 하이트진로의 필라이트와 비슷한 ‘필굿’으로 정하자 ‘베끼기’ 지적도 나온다. 필라이트의 필 스펠링은 보편적인 ‘feel’이 아니라 ‘fil’이다. 오비맥주의 발포주 필굿의 필도 ‘fil’로 썼다. 또 하이트진로는 필라이트의 마케팅을 위해 ‘코끼리’를 제품 표지에 등장시켰는데 오비맥주도 비슷한 콘셉트로 ‘고래’를 내세웠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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