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국가를 만드는 목적은 개인 자유·소유권 보호"

입력 2019-01-16 18:14  

존 로크 《통치론》


[ 홍영식 기자 ] “자연이 제공한 것에서 자신의 노동을 섞어 무언가 보태면 그것은 배타적인 소유가 된다. 이는 자연상태 때부터 존재하는 개인의 고유 권리다. 국왕이라도 이런 개인의 소유권, 처분권에 대해 사사로이 침해할 수 없다. 국가가 국민의 소유물을 보전하지 못하거나 탈취하려 할 경우 국민은 저항할 권리가 있다.”

존 로크(1632~1704)는 《통치론》을 통해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통치론》은 절대왕정을 전복시킨 영국의 명예혁명(1688) 이듬해 출간됐다. 로크는 이 책에서 자유로운 사회 구현을 위해 국가는 어떤 체계로 구성되고,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지에 대한 전략적 설계도를 그렸다. 정치·사회의 운영원리로 다수결의 원리, 입법, 집행(행정), 재판관(사법) 등의 개념도 제시했다.

또 인간 이성의 합리성, 개인 자유의 신성함, 사유 재산의 절대성, 불합리한 통치에 대한 저항권 등 자유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핵심 개념들도 이 책에 담았다. 이런 개념들은 근대 대의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원리로 정착됐다.

로크의 자유주의 개념은 왕권신수설에 대한 투쟁의 산물이었다. 당시 왕권신수설을 내세운 로버트 필머 경은 “하느님이 아담의 후손인 통치자들에게 영토와 함께 신민(臣民)을 준 것이기 때문에 신민은 통치자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할 의무가 있다”며 “신민의 재산 역시 왕이 시혜로서 준 것이기 때문에 통치자는 신민의 동의 없이 이를 처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근대 자유민주주의 이론적 틀 제공

이에 대해 로크가 왕권신수설에 기초한 절대왕정 체제를 근본적으로 반대하며 내세운 것이 사회계약론이다. 로크는 “인간은 각자가 자기를 위한 재판관이고 집행자”라며 “통치자의 권위는 신민이 자발적으로 체결한 사회계약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신민의 재산에 대해 함부로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로크와 토머스 홉스는 같은 사회계약론자이지만, 자연상태를 보는 시각은 확연히 달랐다. 홉스는 자연상태를 힘과 폭력에 의한 ‘만인(萬人) 대 만인의 투쟁 상태’라고 전제한 반면, 로크는 자연상태에서도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라고 여겼다. “국가나 시민사회는 없지만, 신(神)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연법이 규율하기 때문에 자연상태에서도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 또 신이 인간에게 이성과 양심을 주었기 때문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선의(善意)를 바탕으로 상호부조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왜 자연법에 의해 유지되는 자연상태를 포기하고 사회계약을 맺고 국가와 정부를 탄생시킬까. 로크는 자연상태에선 영원한 평화를 보장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 근거로 편파성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사람들이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하다 보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편파성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자연상태에서는 심판관이 없다 보니 사회 혼란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자연상태에서는 이성의 불완전함 등 인간의 다양한 약점으로 인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타인의 침해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그래서 적의(敵意)가 분출되는 등 매우 불안정한 상태다.”

로크 사상의 핵심은 ‘사적 소유권’이고, 이를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국가와 정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이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자발적 동의에 의해 국가를 만드는 근본 목적은 소유권 보전에 있다고 본 것이다. 이때의 소유권은 재산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인격과 인신까지 포괄하는 보다 적극적인 개념이다.

"사회계약 위반한 군주에 저항 가능"

로크는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생명과 자유, 재산에 대한 권한을 자동적으로 얻는다”고 했다. 이른바 천부인권론이다. “사람들은 생명, 자유, 재산이라는 자연권을 보다 안전하게 향유하고 보존하기 위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 권한을 정부에 위임할 것을 결의한다. 그럼으로써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국가라는 안전한 틀 속에서 살 수 있다.”

로크의 사적 소유권의 핵심 논리는 노동이다. 노동을 통해 자연에 새 가치를 부가시켰을 경우 자연은 노동을 가한 자의 몫이 된다는 것이다. “신은 인간에게 노동의 대가인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자연이 놓아둔 공유의 상태에서 노동을 부가하면 그 부가된 것에 대해선 타인의 권리가 배제된다.”

영토와 재산이 왕의 소유물로 인식되던 것에 반기를 들며 사적 소유의 절대성을 주장한 것이다. 로크가 ‘자유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다. 이런 로크의 소유권 사상은 명예혁명을 통해 새 지배층으로 들어온 자본가의 정치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통치론》의 또 다른 핵심은 잘못된 정부에 대한 저항권을 인정한 것이다. “군주나 권력자가 사회계약에 의해 통치를 수탁한 상황에서 국민의 재산과 자유를 보전하지 못할 때는 저항하고 새로운 입법자를 만들 권리가 국민에게 있다.” 왕이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사익을 추구할 때 왕을 폐위시킬 수 있다는 과감한 주장도 폈다. 이런 로크의 저항권 사상은 영국 입헌주의와 미국 독립선언, 프랑스 혁명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했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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