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데뷔 28년. 하지만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는 유호정의 3번째 영화다. 전작 '써니' 이후 9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유호정은 타이틀롤 장미 역을 맡아 홀로 억척스럽게 딸을 키우는 엄마부터 두 남자의 구애를 동시에 받는 로맨스까지 선보인다.
지금까지 필모그라피를 보더라도 유호정은 다작하는 배우는 아니다. 하지만 꾸준함이 있는 배우다. 1991년 MBC '고개숙인 남자'로 데뷔한 후, 결혼을 하고 출산과 육아를 겸하며 지금껏 멈추지 않고 차근차근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유호정 스스로도 "이렇게 계속 연기를 할 수 있을지 몰랐다"며 "항상 감사하다"고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 오랜만에 영화 개봉을 앞둔 기분이 어떤가.
부담스럽다.(웃음) 이렇게 여성이 중심이 돼 배우 혼자 오롯이 이끄는 작품도 많지 않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이런 부분들을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시나리오, 작품 그 자체를 보려고 했다.
▲ 그동안 영화에 왜 안나온 건가.
제안이 온 작품들 중에 힘든 내용들이 많았다. 성폭행을 당한 딸을 가진 엄마, 유괴당한 딸을 찾기 위한 엄마, 이런 시나리오는 제가 보면서도 너무 아파서 못하겠더라. 그래서 꺼렸던 부분들이 있었다. 따뜻한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있던 차에 '그대 이름은 장미'라는 작품을 만났다. 그동안 엄마 역할을 할 때 저의 경험을 떠올렸는데, 이번엔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났다.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촬영을 하고, 영화를 볼 때까지 '우리 엄마가 이런 기분이었겠군' 싶었다.
▲ 어떤 부분에서 크게 공감이 갔나.
매 장면이 그랬다. 특히 깜짝 놀랐던 부분은 있었다. 홍수가 나서 장미가 현아(채수빈 분)를 대피시키지 않나. 저도 그런 경험이 있다. 저와 동생을 옆 아파트로 피신시키고, 엄마는 집안 살림을 홀로 높은 곳으로 올리고, 옥상에서 지냈다. 아파트에서 저희집 옥상이 보였는데, 그때 기억이 났다. 감독님이 제 얘길 듣고 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흡사한 에피소드라 놀랐다.
▲ 하연수 씨가 좋은 연기를 보여줬지만, 젊은 장미까지 홀로 소화하고 싶다는 욕심은 안들었나. 요즘은 워낙 특수분장이 잘 돼있으니까.
전혀.(웃음) 저는 제 스스로를 잘 안다. 저는 춤과 노래를 정말 못한다. 하연수 씨가 춤과 노래를 잘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노래를 흥얼 거리고 스텝을 밟는 장면도 연습을 해서 그정도였다.
▲ 실제 유호정의 삶은 '싱글맘' 장미와 많이 다르지 않나.
상황은 다르지만 아이를 생각하는 건 같았다.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가장 좋은 선택을 하고 싶은 마음, 그래서 장미가 하는 선택들에 공감이 갔다.
▲ 시사회를 마친 후 간담회에서 '명환(박성웅 분), 순철(오정세 분) 두 사람에게 모두 사랑받는 설정이라 좋았다'는 말을 했다. 좀 더 진한 중년의 멜로는 어떤가.
좋다. 요즘 중년의 로맨스에 관심이 간다. 영화 '파리로 가는 길' 같이 여행하는 시간 동안 흔들리는 마음을 담은, 그 정도의 로맨스라면 좋지 않을까. 다양한 볼거리와 음식들이 더해지면 더 좋을 거 같다.
▲ 이재룡 씨가 방송에서 '내가 골라준 작품들이 다 잘된다'는 말을 하더라. 작품 결정을 같이 하는 편인가.
그렇다. 다 잘되긴 했는데 그렇게 잘난 척을 하더라.(웃음) 제가 뭘 하든 응원하는 편이고, 그래서 이견이 없다. 그리고 용기를 준다. 이번에도 '네가 하고 싶었던 거였잖아', '잘할 수 있겠다', '할 수 있는데 안해서 그러는거야' 같은 응원을 해줬다. 그 덕분에 도전할 수 있었다.
▲ 이재룡 씨는 극중 순철과 명환 중 어디에 가깝나.
성향은 순철에 가깝다. 친구같은 편안함이 있고, 뭐든 받아주는 '예스맨'이다. 의견을 물어볼 수 없다. 어떤 부탁이든 들어준다. 책임감이나 아이를 향한 애정은 또 명환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 완벽한 남편이다. 그래서 후배 배우들에게 '배우와 결혼하라'고 추천하는 건가.
제가 지금까지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건 남편이 같은 직업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 거 같다. 이해의 폭이 다른 사람보다 넓다. 저도 그 현장에 있으니 여러 상황을 충분히 알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거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 작품을 마음 편히 하는 게 쉽지 않은데, 남편이 배우라면 그런 면에서 좋은 거 같더라. 그래서 '멀리서 찾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해준다.
▲ 엄마 유호정은 어떤가.
저는 어머니가 홀로 저와 제 동생을 키워서 굉장히 엄하셨다. '아빠없이 자라는 아이'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기 위해 더욱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셨다. 지금은 엄마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되지만, 그땐 '좀 더 애정을 표현해주셨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전 아이들에게 '하루에 100번씩 사랑한다고 말해주자'고 결심했다. 이번 영화를 하면서 딸에게 '난 어떤 엄마야?'라고 물었는데, '친한 친구같은 엄마'라고 해주더라. '엄마랑 노는 게 제일 재밌다'고 해줘서 고마웠다.
▲ 아이들과 있을 땐 어떻게 지내나.
관심사를 같이 나누려고 한다. 요즘 저희 딸이 방탄소년단을 좋아한다. 같이 노래도 듣고, '이 파트는 00가 부르는 거야'라고 하면 '아, 그렇구나'하고 맞장구치고. 옷을 사러 갈 때도 제가 골라줘야 안심이 된다고 하더라. 아직 15살이라 사춘기가 안 온거 같다. 그래도 키는 저보다 크다. 벌써 167cm다.
▲ 아이들이 연기를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해보고 싶다고 하면 하라고 할텐데, 아직 그런 말은 안하더라. 밤새도록 촬영하는 걸 보면서 '너무 힘들어서 누가 하라고 해도 못할 거 같아'라는 말은 했다. 몸이 약해서 밤은 못샌다고.
▲ 올해로 만 50세, 연기자 경력은 28년이 됐더라.
벌써 그렇게 됐다. 올해가 결혼 24주년인데, 연애를 4년 했으니 남편이랑 만난지도 28년이 됐다. 제 연기 인생과 비슷하다. 초반엔 고비도 많았고, '연기를 할 수 있을까' 했던 시기도 있었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 크게 욕심도 없었다. 안되는 걸 붙잡고 아둥바둥 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지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거 같다. 전 20대보다 지금의 제가 더 좋다. 결혼을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평안해 졌다. 흔드리지 않는것,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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