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꽃 피운 기술…럭셔리 시계, 여자의 손목을 빛내다

입력 2019-01-18 18:13   수정 2019-01-21 18:59

진화하는 명품 시계 - 스위스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

디자인은 더 화려하게 다이얼은 더 작게
에르메스, 다이얼을 밤하늘 별처럼 꾸며
피아제는 다이아몬드와 골드로 장식
예거르쿨트르·까르띠에도 女 시계 앞세워

바쉐론콘스탄틴 4년 공들인 '트윈 비트'
억대 가격에도 올해 예약주문 꽉 차
세상 단 1개 로저드뷔 '엑스칼리버 원오프'
13억 9500만원 가격에도 바로 팔려



[ 민지혜 기자 ]
‘화려함과 기술력의 경쟁.’

매년 1월 열리는 스위스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는 초고가 명품 시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럭셔리 박람회’다. 올해 29회째인 SIHH는 눈부실 정도의 화려함과 깜짝 놀랄 신기술의 경연장이었다.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스위스 제네바 팔엑스포 전시장에서 열린 이번 박람회는 전 세계에서 모인 시계 바이어, 초우량고객(VIP), 인플루언서, 언론인 등 2만3000여 명이 찾아 나흘 내내 북적였다. 까르띠에 피아제 바쉐론콘스탄틴 예거르쿨트르 몽블랑 IWC 로저드뷔 파네라이 등 리치몬트그룹에 속한 명품 시계 브랜드는 물론 오데마피게 에르메스 보베 르상스 HYT 등 총 35개 시계 브랜드가 참가해 신제품을 대거 선보였다. 참가 브랜드 수는 역대 최대다.

“급증하는 시계 소비자 ‘여성’을 잡아라”

명품 시계 브랜드들은 올해 박람회에서 작고 화려한 여성시계를 전면에 내세웠다. 묵직하고 큼지막한 남성시계 위주였던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시계의 주요 소비층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확대되면서 새로운 여성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명품 시계업계 한 관계자는 “남성과 여성의 매출 비중이 예전엔 9 대 1이었다면 이젠 7 대 3에서 6 대 4까지 확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여성 손목에 맞도록 다이얼 크기를 더 작게, 디자인은 더 화려하게 만드는 게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는 분석이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SIHH에 참가한 에르메스는 여성시계 2종을 주력 상품으로 선보였다. ‘아쏘 레흐 드라룬’은 두 개의 달을 다이얼에 담았다. 천연운석과 사금석을 사용해 다이얼을 밤하늘의 빛나는 별처럼 반짝이게 제작했다. 문페이즈(달의 기울기를 보여주는 기능)는 보통 달의 한쪽 표면만 보여주는데 이 시계에는 남반구에서 보는 달과 북반구에서 보는 달의 표면을 예술적으로 표현했다. 올해 처음 출시한 ‘갤롭 데르메스’는 아래가 넓은 비스듬한 사각형의 다이얼로, 원형과 사각형의 강점을 모아 세련된 여성미를 드러냈다.

여성시계의 강자로 꼽히는 피아제는 다이아몬드와 골드로 장식해 ‘화려함의 극치’라는 평가를 받았다. 피아제의 대표 시계인 ‘포세션’은 시계 전체를 다이아몬드로 뒤덮은 신제품을 선보였다. 또 금 표면을 마치 파충류의 피부처럼 일일이 깎아 반짝이게 만든 신제품도 공개했다. 꽃봉오리처럼 여러 각도에서 반짝이도록 세팅한 다이아몬드로 베젤(테두리)을 두르는가 하면,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오묘하게 변하는 마더오브펄(진주조개)로 다이얼 표면을 제작했다.

우아한 시계로 유명한 예거르쿨트르의 ‘랑데부’는 올해 문페이즈 디자인을 바꾸고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신제품을 공개했다. 문페이즈는 달의 기울기를 보여주는 기술력이자 시계의 기능이지만 그 자체를 예쁜 디자인으로 여기는 여성이 많다는 데 주목한 것이다. 동글동글한 구름 위에 달과 별이 반짝이는 모습을 표현했다.

주얼리워치로 유명한 까르띠에는 우아한 곡선 형태의 ‘베누아’와 클래식한 사각 디자인의 ‘팬더’ ‘산토스’ 등 여성시계 신모델을 대거 선보였다. 베누아는 베젤을 독특하게 깎아 반짝임을 극대화하거나 다이아몬드를 배치했다. 팬더는 골드와 다이아몬드로 화려하게 장식했고, 원석을 잔뜩 세공한 고가의 하이주얼리워치도 여럿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점점 치열해지는 기술력 경쟁

각 브랜드는 기술력을 놓고 불꽃 튀는 자존심 경쟁을 벌였다. 얼마나 더 어렵고 복잡한 기술을 한꺼번에 한 시계에 담아내는지, 복잡한 기능을 얼마나 정교하게 구동시키는지 등 기술력 경쟁이 치열했다.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명품 시계 브랜드 바쉐론콘스탄틴은 4년 동안 개발한 역작을 공개했다. 수동으로 태엽을 감아 시계가 구동되며 파워리저브 기능을 65일까지 늘린 혁신적 시계 ‘트윈 비트’를 출시한 것이다. 이 시계는 5㎐, 1.2㎐ 2개의 진동 수를 선택할 수 있어 시계를 차고 있지 않을 때는 구동에 필요한 동력을 아낄 수 있게 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시계의 비트를 간편하게 바꿀 수 있어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두 달이 넘는 파워리저브, 퍼페추얼캘린더 기능을 담았지만 가격을 2억원대로 책정해 벌써 올해 예약주문이 다 찼다.

예거르쿨트르는 기존 투르비용(중력으로 인한 시간 오차를 줄여주는 장치)보다 크기를 20% 줄인 자이로투르비용,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미닛리피터, 윤년까지 계산해 날짜를 자동으로 맞춰주는 퍼페추얼캘린더, 다이얼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에나멜·기요셰·인그레이빙 등 모든 기술력을 한데 담은 신제품을 공개했다. ‘마스터그랑트래디션 자이로투르비용 웨스트민스터퍼페추얼캘린더’는 블루와 실버 두 가지를 각각 18개만 한정 판매한다. 13억원에 달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중동 등에서 온 바이어들이 이미 여러 개 예약을 걸었다.

13억9500만원에 달하는 로저드뷔의 ‘엑스칼리버 원오프’는 단 한 개만 생산했는데 박람회 첫날 싱가포르 바이어가 구입했다. 이탈리아 슈퍼카 브랜드 람보르기니, 레이싱 타이어 전문 브랜드 피렐리와 함께 협업해서 제작한 이 시계는 버튼을 눌러 태엽 감기(와인딩), 시간 조정(타임세팅)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IWC는 파일럿워치에 처음으로 항력 투르비용을 적용한 ‘빅파일럿워치 항력투르비용 어린왕자 에디션’을 선보였다. 몽블랑은 산악 탐험가들이 꿈꾸는 세계 7대 정상에 빨간 점을 찍어 표시한 ‘1858 지오스피어’를 출시했다.

시간을 보여주는 방식도 다양해져

시침과 분침으로 시간을 가리켜 보여주는 기존의 방식을 탈피한 시계들도 눈길을 끌었다. 독립 시계 브랜드 에이치모저앤씨(H.Moser&Cie)는 다이얼 전체를 새카맣게 가린 ‘스위스알프스워치 콘셉트블랙’을 공개했다. 이 시계는 6시 방향에 투르비용만 넣었을 뿐 어디를 봐도 시간을 알 수 없다. 왼쪽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미닛리피터가 소리로 시간과 분을 알려주는 방식의 시계다.

미닛리피터로 ‘보는 시계’를 ‘듣는 시계’로 탈바꿈한 브랜드는 여럿 있었다. 예거르쿨트르, 오데마피게 등은 청량한 소리로 시간을 듣고 알 수 있게 한 신제품을 선보였다. 특히 예거르쿨트르는 귀에 익숙한 미, 도, 레, 솔의 화음을 사용해 시간을 듣는 것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기존 시계보다 더 선명하게 숫자를 볼 수 있도록 슈퍼루미노바(야광) 소재로 가독성을 높인 시계도 많았다. 슈퍼루미노바는 원래 다이버워치에만 주로 쓰였다. 심해에서도 시간과 분, 남은 산소량 등을 정확하게 알려줘야 하기 때문에 숫자와 시곗바늘을 크게 만들고 그 위에 야광을 덮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젠 평상시에 착용하는 시계에도 야광 소재를 사용해 어두운 밤에도 쉽게 시간을 알 수 있게 했다. 대표적인 제품이 파네라이의 ‘섭머저블’ 컬렉션과 까르띠에의 ‘산토스 드 까르띠에 스켈레톤’이다. 파네라이는 올해 ‘섭머저블 크로노 기욤네리 에디션’ 등 탐험가들의 협업제품을 출시해 제품을 구입하면 탐험가들과 함께 현장에 가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다이버 기욤 네리와 폴리네시아에 갈 수 있는, 15개 한정 판매 시계는 SIHH 기간에 다 팔렸다.

예거르쿨트르 관계자는 “이미 나올 만한 기술은 다 나왔기 때문에 이를 얼마나 잘 어우러지게 담는지, 또 얼마나 아름답게 다이얼을 구성하는지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SIHH를 빛낸 시계(*위에 사진 시계방향으로 제품명)

까르띠에 - 베누아
피아제 - 포세션
바쉐론콘스탄틴 - 트윈 비트
예거르쿨트르 - 마스터그랑트래디션 자이로투르비용 웨스트민스터퍼페추얼캘린더
IWC - 빅파일럿워치 항력투르비용 어린왕자 에디션
로저드뷔 - 엑스칼리버 원오프
H.Moser&Cie - 스위스알프스워치콘셉트블랙
HYT - Time is Fluid

제네바=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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