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 전 모든 회원국과 협의
상품·서비스·투자·금융 등 최고수준 시장 접근 허용해야"
가입 저울질하는 한국 부담 커져
정부 "절차확인 후 참여여부 결정"
[ 서민준 기자 ] 지난달 발효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인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회원국들이 “새로 참여를 원하는 나라는 최고 수준으로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CPTPP 가입 문턱이 예상보다 높아져 참여를 검토 중인 한국의 입지가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CPTPP는 일본, 캐나다, 호주, 멕시코,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 칠레, 페루, 뉴질랜드, 브루나이 등 11개국이 참여한 다자간 FTA다.
2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CPTPP 11개 회원국은 지난 19일 장관회의를 열고 신규 참여 희망국에 대한 가입 절차를 정했다. 이들 회원국 방침에 따라 앞으로 추가 참여 희망국은 가입 요청 전 모든 CPTPP 회원국과 비공식 협의를 해야 한다. 회원국들 사이에 합의가 이뤄지면 CPTPP 내 작업반을 설치해 가입 절차를 개시한다. 작업반과 참여 희망국 사이 가입 조건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참여 요청 후 60일 뒤 회원 자격을 얻는다.
눈에 띄는 것은 가입 희망국에 부여한 의무다. 회원국들은 CPTPP 가입을 희망하는 국가는 CPTPP의 규범을 수용하고 ‘가장 높은 수준(the highest standard)’의 시장 접근을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구체적으로 상품, 용역, 투자, 금융 서비스 등에서 최고 수준의 시장 개방을 약속해야 한다고 했다.
이 규정은 신규 가입 문턱이 높게 설정됐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 가령 CPTPP에서 정한 특정 상품의 시장 개방률이 나라별로 80~100%일 때 가입 희망국은 100%를 선택해야 한다는 뜻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해석대로면 새로 가입하는 나라는 자국 시장을 대폭 개방해야 해 부담이 크다.
지나친 확대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모든 상품, 용역에 최고 수준의 개방률을 택해야 한다는 의미까지는 아닐 것”이라며 “개방 수준은 품목별로 협의를 거쳐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최고 수준의 개방’이란 문구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 추가 가입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가입 희망국은 높은 수준의 시장 양허를 각오하고 들어오라 정도의 메시지임은 분명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CPTPP 가입이 힘들어질수록 한국이 ‘통상 외톨이’가 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CPTPP는 가동 중인 다자간 무역협정 중 두 번째로 커서 파급력도 크다. 특히 자유로운 전자정보 이동 등 선진화된 무역 규범을 담고 있어 가입이 늦어지면 세계 통상 변화 흐름에 뒤처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CPTPP 가입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일 시장 개방에 따른 손실 우려가 그중 하나다. CPTPP 가입은 사실상 일본과 FTA를 체결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일본은 상당수 공산품의 관세가 이미 0%여서 CPTPP 가입 때 우리만 일방적으로 시장을 개방하는 결과가 빚어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통상 전문가는 일본과의 자유무역을 언제까지나 피할 수는 없으며 중장기적으로 CPTPP 가입 효과가 부작용보다는 크다고 지적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가입 절차의 정확한 의미 등을 확인한 뒤 CPTPP 가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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