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갑 기자 ]
유럽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단색화가 남춘모 씨(58)는 자연의 정서와 리듬감을 화면에 풀어내는 작가다. 어릴 적 고향 경북 영양에서 본 산 능선, 밭이랑, 돌담 등에서 느낀 선(線)의 운율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구불구불한 선으로 풍경을 바라보고 자연을 해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계명대 미대와 대학원을 졸업한 남씨는 수많은 선으로 풍경을 부조처럼 새기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부조회화는 국내외 화단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독일 안도 파인아트갤러리, 프랑스 이부갤러리에 잇달아 초대된 그는 지난해 독일에서 유명한 코블렌츠 루트비히미술관의 ‘러브콜’을 받았다.
남씨가 오는 6월9일~8월20일 루트비히미술관 초대전을 앞두고 서울에서 자신의 조형세계를 미리 펼쳐보인다. 지난 18일 시작해 3월30일까지 서울 삼청동 리안갤러리에서 열리는 ‘남춘모’전을 통해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선’이라는 모티브를 활용해 부조회화라는 독특한 영역으로 변주한 격자 골조 형태의 ‘스트로크 라인(Stroke Line)’과 ‘빔(Beam)’ ‘스프링(Spring)’ 시리즈 등 20점을 내보인다. ‘자연은 자연스러운 것’이란 사실에 평생 매달리며 구부러진 선으로 자연의 속내를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남씨는 “선으로 자연의 영혼과 흔적을 찾은 화가만 남았을 뿐 그 어떤 장식의 말조차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남씨가 자연의 생동감을 전달하려는 궁리 끝에 찾아낸 것이 호흡과 터치 같은 ‘자연의 리듬’이다. 벼 이삭이 넘실대는 논고랑과 씨앗을 파종하기 위해 쟁기로 갈아놓은 밭이랑, 구름인지 섬인지 모를 정도로 멀리 보이는 다도해, 자연의 형태를 그대로 취한 돌담에 그는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풍경에서 발견되는 선, 자연에서 나오는 신선함, 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헤맴의 깊이가 내 그림의 힘입니다.”
늘상 농부의 마음으로 작업한다는 그는 기발하게 제작한 선을 활용해 자연의 본질을 파악하고, 어떻게 확대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선은 일정한 폭으로 자른 광목천을 나무틀에 고정시키고 폴리코트(합성수지)를 발라 건조한 뒤 떼어내 일정 크기로 잘라 만들어진다.
‘빔’ 시리즈는 ‘ㄷ’자형 선을, 스프링 시리즈는 곡선을 캔버스 위에 반복적으로 붙여 패턴화된 공간을 만든다. 검정과 흰색, 빨강, 파랑 등의 단색 아크릴 물감을 칠해 완성한 작품들이다. 서구의 이성적·수학적인 접근법을 통한 논리적 표현 방식이란 점에서 시선을 붙잡는다.
화면을 수놓은 선들은 불규칙적이지만 멀리서 봤을 때는 규칙적으로 일정하게 그어진 직선이나 곡선처럼 보인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선들은 미묘한 진동과 울림을 만들며 시각을 자극한다. 전시장의 조명은 선들의 그림자를 생성하며 화면을 끊임없이 역동시킨다. 관람객은 작품 자체의 물성과 빛의 상호작용을 경험하면서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정감과도 비슷한 ‘정서적 공감(empathy)’을 마주하게 된다. 단색의 사용이나 동일한 행위의 반복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단색화나 서구의 미니멀리즘 등과 형식적, 미학적으로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이 부분이 해외 시장에서 그를 주목하는 까닭이다.
안혜령 리안갤러리 대표는 “남씨의 작품은 한국적이면서도 서구의 미학적인 부분도 동시에 담고 있어 해외 미술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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