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방식 개혁해 생산성 높이자"…日 정부 '노동시장 禁忌' 깼다

입력 2019-01-22 17:45  

2019 일본리포트 - 일본을 보며 한국을 생각한다

이민빗장 풀어 외국인노동자 수용
시간당 노동생산성 OECD 하위
저출산·고령화, 생산혁명으로 돌파

연공서열·종신고용과 과감히 결별
임금 오르지만 노동생산성도 뛰어
정책효과 땐 큰 폭 생산향상 기대



[ 유병연 기자 ]
한국 국회가 올해 예산안을 처리한 지난달 8일 새벽, 일본 의회에선 여야 간 몸싸움 속에 노동시장에 충격파를 던지는 법안이 통과됐다. 단순 노동자에게 이민 빗장을 풀어 외국인 노동자 수용을 대폭 확대한다는 내용의 출입국관리법 개정이었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일본 기업에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를 장기간 고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겠다는 취지였다. ‘종신고용’으로 대변되는 보수적인 일본 노동시장의 금기를 깨는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야당과 노동계뿐만 아니라 아베 신조 정부를 지지하는 보수층에서조차도 “일자리를 약탈하는 악법”이라고 반발했지만 정부와 여당인 자민당은 이를 강행 처리했다.

일본의 새 도전 ‘일하는 방식 개혁’

일본은 노동시장에도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아베 총리가 2017년 11월 4차 내각 출범과 함께 ‘생산성 혁명’을 일본 경제의 성장 전략으로 천명하면서다.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해 노동시장 개혁 대신 ‘일하는 방식의 개혁’이란 기치를 내걸었다.

일본 노동시장을 유연근로제 도입 등으로 개혁해 생산성에 혁명을 꾀하겠다는 아베 정권의 핵심 정책이다. 2018년 7월 ‘일하는 방식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관계 법률의 정비에 관한 법률’이 공포돼 올 4월부터 순차적으로 시행된다.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비효율적인 장시간 근로 대신 유연하고 효율적인 노동 문화를 유도하고, 성과에 비례하는 보상체계를 도입한다는 게 골자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노동조건 개선,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의 내용을 담았다. 주요 내용은 △연장근로가 연간 최대 720시간, 한 달 기준 최장 100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근로시간 규제 △근로시간이 아닌 성과를 기준으로 임금을 주는 탈시간급 제도 도입 등이다.

한국의 노동개혁은 소득 증가와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찍고 있는 데 비해 일본은 노동생산성 향상이 확고한 목표라는 점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 노동정책이 소득 증대를 통한 수요 확대를 노리는 데 비해 일본은 노동 효율성과 생산성 증가라는 공급 혁신을 겨냥하고 있다.

규제의 강도와 경직도 면에서 한국과 큰 차이를 보이는 이유다. 한국은 주 최대 52시간 근로를 못박고 있으나 일본은 주간 규제가 없고, 월간·연간 상한만 두고 있다. 한국은 노동시간 단축 규제 도입 후 4개월 만에 전면 시행에 들어갔지만 일본은 대기업은 올 4월, 중소기업은 내년 4월로 이행 시기를 달리해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대응하도록 했다. 야노 가주히코 일본 미즈호종합연구소 조사본부 이사는 “소위 ‘회사형 인간’의 근간이 된 연공서열을 깨고 종신고용 등 일본 특유의 노동규범과도 과감히 결별하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혁신

일본의 노동개혁은 저출산·고령화와 생산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문제를 생산성 혁명으로 돌파하기 위한 처방이다.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는 1995년 8700만 명을 정점으로 줄기 시작해 2017년 7500만 명으로 1200만 명 감소했다. 고령화는 노동생산성 저하를 불러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가맹국의 노동생산성을 분석한 결과 2017년 일본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7.5달러로, 주요 7개국(G7) 가운데선 최하위로 나왔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34.3달러로 일본보다도 뒤처져 있다. OECD 36개 회원국 중 27위다. 한국보다 노동생산성이 낮은 국가는 포르투갈 헝가리 에스토니아 그리스 라트비아 등 5개국이 전부다.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한 명의 노동자가 1시간 동안 어느 정도의 상품 및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생산인구가 주는 데다 노동생산성 하락까지 겹치면서 잠재성장률도 떨어지고 있다.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2009년 0%까지 추락한 데 이어 2013~2016년에도 평균 1% 수준에 머물렀다. 아베 총리는 0.9% 수준인 생산성 상승률을 2% 수준으로 올린다는 방침이다. 설비투자도 2020년까지 10% 늘릴 계획이다. 연간 3% 이상 임금 상승률 달성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는 “일본의 노동개혁은 생산성 혁명의 핵심 동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일본은 임금이 오르지만 노동생산성도 함께 뛰고 있어 정책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 큰 폭의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쿄=유병연 마켓인사이트 부장 yoob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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