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칼·대한항공 주가 등락 거듭
기업의 내재가치 아닌 정치변수가 주가 변동성 키워
문재인 대통령 발언 논란 빚자…靑 "명백한 위법일때만 행사"
[ 유창재/박재원 기자 ]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원칙)에는 죄가 없습니다. 스튜어드십코드가 정치화·이념화하면서 순수성이 훼손된 게 문제죠.”
가치투자 펀드를 운용하는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24일 문재인 대통령의 전날 스튜어드십코드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깝다”며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공정경제 추진전략 회의’에서 “정부는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를 적극 행사해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하게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주주 권리를 행사해 투자한 기업 가치를 높인다는 스튜어드십코드는 문제될 게 없지만, 그 주체가 정부라는 발상은 상당히 위험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으로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됐던 ‘국민연금의 독립성’ 에 대한 우려가 기우가 아니었음이 확인됐다는 지적이다.
불확실성에 시장 혼란 가중
대한항공 주가는 이날 등락을 거듭하다 0.27% 하락한 3만6350원에 거래를 마쳤다. 한진칼 주가 역시 상승세로 출발했다가 하락 반전해 0.84% 내린 2만9350원에 마감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의 과반이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에 반대했다는 소식과 문 대통령의 스튜어드십코드 적극 행사 발언이 동시에 나오면서 시장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며 “기업의 내재가치가 아닌 정치 변수가 한진그룹 상장사 주가의 변동폭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수탁자책임위는 23일 회의를 열어 국민연금이 각각 7.34%와 11.56%를 보유한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한 주주권 행사 여부와 범위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9명의 위원 중 5명이 ‘이사 해임, 정관 변경 등 상법상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은 현재로서는 행사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놨다.
문제는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다음달 초로 예정된 회의에서 수탁자책임위의 의견을 받아들일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기금위는 투자 전문가가 아닌 정부, 시민단체, 노조, 사용자단체 등 이해관계자 대표들로 구성돼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기금위 구성이 진보 성향으로 크게 기울었다는 평가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적극적인 스튜어드십코드 행사를 언급하면서 기금위 위원들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며 투자자들이 “경영전략이나 유가, 환율 같은 기업 분석이 아니라 기금위 위원들의 성향을 분석해야 한다는 건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라고 지적했다.
“오해하지 말라”는 청와대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 발언에 대해 일부 오해가 있는 듯하다”며 “정부는 기업의 중대·명백한 위법활동에 대해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행사한다는 원칙을 밝힌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적극적 주주권 행사(여부와 범위)는 수탁자책임위의 논의 결과를 참고해 기금위가 논의하고 결정할 사항”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정부와 이해관계자들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국민연금의 지배구조 때문에 시장 혼란은 계속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한 주주권 행사 논의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찬진 기금운용위원(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여 주가를 높이는 것보다는 정치적 목적에 국민연금이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창재/박재원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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