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한 해 성적표인 공시 자료들이 쏟아져 나올 시점이다. 이들 공시 자료를 통해 국가 경제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데, 주식투자 등 재테크에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도 된다.
이들 공시 자료를 보면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한국 기업은 공시를 통해 주로 자사의 긍정적인 소식을 전달하는 데 비해 미국 기업은 부정적인 소식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미국 기업은 지난 30년간 자발적으로 공시를 통해 자사의 부정적인 소식 비중을 꾸준히 늘려왔다.
미국 기업도 1970~1980년대에는 자사에 우호적인 소식을 공시를 통해 알렸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부터 부정적인 소식 비중이 늘더니 1990년대에는 긍정적인 내용보다 부정적인 내용 비중이 커졌다.
미국 기업이 이처럼 자발적으로 부정적인 공시 비중을 늘린 배경에는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도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미국에선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을 즉시 투자자에게 공개하지 않으면 대규모 집단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미국 투자자들은 회사가 달성한 성과가 예측치로 공시된 내용과 일정 수준 이상 차이 나면 여지없이 집단소송을 건다. 기업이 의도적으로 예측치를 과대 표현했거나 중간에 실적 예측치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투자자에게 공시하지 않은 데 대한 소송인 것이다.
투자자뿐 아니라 미국의 변호사들도 사건을 수임하기 위해 특정 회사의 공시 자료를 관찰한다. 특정 회사의 공시 내용이 모호하거나 과장됐다고 판단하면 TV나 신문 광고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집단소송을 독려하는 추세다.
이처럼 미국에선 투자자 집단소송이 활발하다 보니 경영진이 소송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자구 노력을 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공시 내용에 부정적인 뉴스가 더 빈번히 발표되는 형태로 이어진 것이다. 아울러 투자자가 공시 내용과 관련해 더 문의할 수 있는 경로를 병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에 비해 국내 기업의 공시 자료는 상대적으로 투자 관련 긍정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기회로 삼는 분위기다. 어쩌다 부정적인 사항을 공시할 때면 해당 내용을 가능한 한 모호하게 표현하고, 관련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세부 경로를 함께 제시하는 경우도 드물다. 우리나라 기업 공시 자료의 신뢰성은 언제나 높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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