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만나려고 즐겁게 홍대로 향했다. 세상에 전쟁이 난 듯 휴대폰 불통. 집에 가면 TV, 인터넷도 안 될 거라는 상담원 말에 멘붕(멘탈 붕괴). 너무 화가 나서 통신사 갈아탄 사연.”
지난해 11월24일 서울 충정로 KT 아현국사 화재로 통신장애 사태를 빚자 배우 박은혜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이렇게 썼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불만을 토로했다. 문제는 통신사였다. 휴대폰 단말기가 아니라. 하지만 일반적으로 통신사를 갈아타려면 결국 휴대폰도 같이 바꿔야 한다. 통신사와 단말기가 ‘세트’로 묶인 탓이다.
그렇다면 유심(USIM·범용가입자인증칩)을 갈아 끼우면 되지 않을까. 유심은 휴대폰 사용자 정보를 담은 칩이다. 이론적으로는 단말기에 유심만 바꿔 끼우면 통신사를 옮길 수 있다. 해외여행 갈 때 유심을 써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집도 직장도 충정로 인근이라 KT 아현국사 화재 당시 스마트폰 먹통으로 종일 불편을 겪었다는 지인에게 “비용이 좀 들어도 다른 통신사에 가입하고 유심을 받아쓰지 그랬느냐”고 귀띔했다. 그러자 지인은 “유심을 교체하면 휴대폰에서 전화 통화와 인터넷밖에 안 된다고 하더라. 그렇다고 다른 통신사 폰을 새로 구하기는 귀찮았다”고 답했다.
가령 KT용 단말기에 SK텔레콤용 유심을 끼우면 평소 사용하던 모바일뱅킹, 지급결제시스템 같은 여러 어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는다. 제조사 설정과 사용하는 통신사가 달라 보안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러한 또 다른 불편을 겪지 않으려면 차라리 SKT용 단말기를 사는 게 속 편하단 얘기였다. 상당한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이다.
납득이 안 됐다. 흔히 스마트폰은 PC와 같다고 한다. 하드웨어(스마트폰)와 망공급자(통신사) 분리는 이상할 게 없다. 통신사 설정이 아예 없는 자급제 폰도 판매되는 마당이다. 소프트웨어(SW) 설정을 통해 단말기(휴대폰)의 통신사가 정해질 텐데, SW 설정은 언제든 수정 가능한 것 아닌가.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가며 단말기 통신사를 바꾸는 실험에 직접 도전해봤다. 우선 사비를 들여 LG유플러스(U+) 갤럭시S8을 구입했다. 목표는 SKT 유심을 끼워 아무런 장애 없이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펌웨어(스마트폰을 작동하는 SW)를 변경하는 것. LGU+ 폰을 SKT 멤버십 앱과 삼성페이가 정상 작동하는 휴대폰으로 바꾸면 ‘목표 성공’이었다.
우선 옮겨갈 통신사 SKT의 갤럭시S8 펌웨어를 구해야 했다. 인터넷에서는 ‘샘펌(Samfirm)’이란 프로그램에서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기자가 시도했을 땐 프로그램이 펌웨어를 찾지 못해 해외사이트 샘모바일(Sammobile)에서 내려 받았다. 15유로(약 2만원)를 내야 하는 유료회원 다운로드 대신 무료 다운로드를 진행했다. 펌웨어 크기 3.4기가바이트(GB)에 다운로드 속도는 초당 약 40킬로바이트(KB/s). 다운로드 실행한 채 PC를 종일 켜뒀지만 중간 중간 오류가 나면서 3일 가량 걸려 완료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이 통신사를 인식케 하는 CSC 파일(단말기 무관)은 별도로 구해야 한다. 앞서 통신사 변경을 시도한 ‘선구자’들이 공개해둔 덕분에 SKT용 갤럭시노트7 CSC 파일을 손쉽게 찾아냈다. 이로써 LGU+ 갤럭시S8 단말기와 SKT용 갤럭시S8 펌웨어, SKT용 CSC 파일 모두 준비.
결과부터 말하면 LGU+용으로 출시된 갤럭시S8은 펌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SKT용 갤럭시S8으로 거듭났다. 이후 약 2주가 지났는데 멤버십 앱, 삼성페이 등 모든 기능이 정상 작동하고 있다. 애초부터 SKT용으로 나온 갤럭시S8과 차이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다. SW 업데이트에 필요한 펌웨어와 파일 준비를 제외하면 약 20분 걸려 스마트폰 통신사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유심 기변을 해도 전혀 불편함 없도록 펌웨어를 업데이트하면 굳이 단말기를 바꾸지 않고도 통신사 변경이 가능하단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이 방식을 적용하면 통신사를 옮길 때, 새 폰을 살 필요 없이 기존 폰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펌웨어 업데이트와 함께 유심 기변을 하면 기존 걸림돌이던 보안 문제나 설정 충돌도 없어지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저렴한 통신사 폰을 산 뒤 유심 기변과 SW 업데이트로 원하는 통신사로 갈아타는 것도 가능해진다. 궁극적으로는 기존에 하나로 묶인 단말기와 통신사를 분리해 약정 이슈만 아니면 언제든 붙였다 뗐다 하며 조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기기 교체 수요가 줄고 통신사 간 이동 장벽이 낮아져 진정한 품질경쟁도 가능해진다.
통신사나 제조사는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을까. 혹시 문제는 없을까. SKT 관계자는 “하이엔드 유저들은 번호이동을 하며 그런 방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펌웨어 변경을 금지하는 약관은 없다. 고객 선택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마치 고객 취향대로 스마트폰 케이스나 보호 필름을 택하는 것처럼 문제없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과거에는 주파수와 안테나 감응도 문제 때문에 통신사 이동이 어려운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문제점이 거의 없다”며 “다만 국제단말기식별번호(IMEI) 등의 문제로 통신사 와이파이에 접속되지 않을 순 있는데, 이 또한 고객센터로 연락하면 쉽게 해결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통신사와 제조사 모두 펌웨어 변경에 개입하지 않는다.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쓰면 된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라면서도 “펌웨어 변경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작업은 아니다. 선택에 대한 책임도 사용자가 져야 할 것”이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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