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보리 전도사'로 제2의 전성기"
24년간 코카콜라와 맞선 남자
지원부대 대신 戰線에서 뛰고싶어 제일은행서 웅진식품으로 이직
주변에선 "미쳤다"고 만류했지만 '가을대추' 시작으로 보란 듯 성공
보리차 무기로 음료시장 공략
3500억 규모 국내 茶시장 1兆 가능…웰빙 음료인 보리차가 대표 주자
카페인·당 기피하는 트렌드와도 맞아…'블랙보리'가 음료 한류 이끌 것
[ 김보라/김재후 기자 ]
‘24년간 코카콜라에 맞서 우리 음료를 지켜온 남자.’
조운호 하이트진로음료 대표(58)에게 딱 어울리는 평가다. “조운호가 없었다면 편의점 음료수 코너를 외국 브랜드가 점령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조 대표는 줄곧 ‘한국의 음료’를 내놨다. 다른 식품업체들이 외국 음료를 수입해 판매하는 데 주력한 것과 대비된다. 웅진식품 재직 시절 가을대추, 아침햇살, 초록매실, 하늘보리, 자연은, 내사랑유자씨, 꿀홍삼 등 전통음료 히트작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조 대표는 1999년 웅진식품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38세 때였다. 이후 웅진식품 부회장, 세라젬그룹 부회장, 얼쑤 사장 등을 거쳤다. 2017년부터는 하이트진로음료를 맡고 있다. 그가 하이트진로음료 대표로 취임해 내놓은 첫 작품 블랙보리는 첫해 150억원의 매출을 내며 ‘대박 상품’ 반열에 올랐다. 미국 수출도 앞두고 있다.
경상도 사투리가 말투에 짙게 묻어나는 그에게 “단골 맛집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고민 없이 답이 돌아왔다. 조 대표가 선택한 식당은 토속음식전문점 ‘강너머’. 경기 용인시 기흥역 인근에 있는 소박한 한식집이다. 조 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란 곳은 부산이지만 고향인 전남 해남에 계시던 할머니가 해 주신 음식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남도의 맛 그리울 땐 이곳에”
뜨끈한 매생이국이 나왔다. 조 대표는 어린 시절 먹던 해우국 얘기를 꺼냈다. 해우국은 김국의 다른 말이다. 김을 한자로 쓰면 해의(海衣)다. 남도 땅끝 사람들은 이를 해우라고 불렀다. 그는 “인생 최고 음식이 어렸을 적 해남에서 먹던 해우국”이라고 했다.
따뜻한 해우국은 쌀뜨물에 김을 넣고 참기름 살짝 넣어 먹는 순수한 맛이 일품이다. 건져낸 뒤 바로 먹지 않으면 색이 붉게 변하기 때문에 산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기도 하다.
“아버지 고향이 해남이에요. 네 살 때 부산으로 이사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작은아버지네 식구들을 만나러 매년 해남으로 갔어요. 3남1녀의 장남인 저는 열 살 무렵부터 방학이면 혼자 해남으로 향했지요. 부산에서 보성, 장흥을 거쳐 해남까지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가니 15시간쯤 걸렸던 기억이 납니다. 1년에 2~3개월은 해남에서 지낸 셈이지요.”
그렇게 도착한 해남에는 반짝이는 바다와 아담한 뒷산, 그리고 풍성한 먹거리가 있었다. 먼 길 찾아온 그를 맞아주는 친척들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해남 먹거리 중에서도 그를 사로잡은 건 해우국이었다. 김 양식을 하던 작은아버지가 막 건져낸 김을 듬성듬성 잘라 참기름 넣고 후루룩 끓여주던 그 맛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맛이 됐다.
“잊고 있던 맛을 이 집(강너머)에서 몇 년 전 다시 찾았습니다. 단골이 될 수밖에요. 홍어삼합 등 맛깔나는 음식도 많이 나오지만, 저는 이 집 매생이국을 최고로 꼽습니다. 옛날 해우국 맛이 느껴지거든요. 두툼하고 싱싱한 병어로 만든 병어조림과 환상의 궁합입니다.”
“성공 비결? 한국 뿌리에 답 있다”
조 대표는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때부터 사실상 가장 역할을 했다.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 회계학을 전공했다. 당시 가장 좋은 직장의 하나로 꼽히던 제일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부인도 이곳에서 만났다.
1990년 웅진그룹 비서실에 있던 친구의 권유로 ‘그 좋은’ 은행을 떠났다. 다들 “미쳤다”고 만류했다. 당시만 해도 웅진그룹은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회사였다. “남들이 다 가고 싶어 하는 은행을 그만두고 왜 중소기업에 가느냐”고 했다.
그의 선택을 지지한 유일한 사람은 부인이었다. 조 대표는 “군대로 치면 은행은 지원부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투부대와 같은 기업에서 더 늦기 전에 한번 승부를 걸어보고 싶었지요.” 그가 처음 맡은 직책은 건강음료 방문판매사업을 하던 웅진식품의 기획조정실 총괄팀장 자리였다.
“서울 명문대 나온 직원이 수두룩한데 지방대 야간 나온 나를 왜 이 자리에 앉혔을까, 회장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봤어요. 답이 나오더군요.”
음료라는 걸 아예 몰랐던 그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졌다. 인류는 언제부터, 왜 음료수를 마시기 시작했을까. 230년 전 프랑스에서 ‘용기(bottle)’를 개발하면서 ‘집에서 먹던 걸 들고 다니면서 밖에서도 마시게 된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의 첫 작품은 대추 음료였다. 우리나라 시골 어딜 가나 주렁주렁 열려 있는 가장 흔한 재료를 택했다. 광고 카피도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갈증은 왜 가슴으로 오는가? 남자의 가슴을 적시는 가을대추.’ 1캔에 500~600원이던 이 음료는 첫해 170억원어치가 팔렸다. 지금도 연매출이 100억~150억원이면 히트상품으로 친다.
1995년 가을대추에서 시작된 조 대표의 성공신화는 이후 10년간 아침햇살 초록매실 자연은 하늘보리 꿀홍삼 내사랑유자씨 등으로 이어졌다. 아침햇살과 자연은, 초록매실은 연 1000억원대 브랜드가 됐다.
“‘마실거리’ 문화운동가로 불러주세요”
“평생 할 일을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간 다 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히트상품 제조기’로 불렸는데, 지금은 ‘마실거리 문화운동가’로 불리고 싶습니다.”
조 대표가 하이트진로음료 대표로 취임한 뒤 내놓은 첫 작품은 블랙보리였다. 주원료인 블랙보리는 농촌진흥청이 2011년 개발한 신품종으로 해남과 전북 고창에서 주로 재배된다. 일반 보리에 비해 항산화 물질인 안토시아닌이 4배, 식이섬유가 1.5배 많아 최고 품종으로 꼽힌다. ‘검은색 음료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음료업계의 속설을 깨고 지난해 4200만 병(320mL 기준), 150억원어치가 팔렸다.
그는 “미국에서는 햄버거와 콜라를, 일본에서는 스시나 튀김에 어울리는 녹차를, 우리는 맵고 짠 식사를 한 뒤 숭늉을 찾는 문화가 있다”며 “보리차는 숭늉과 한 뿌리인 곡차인 만큼 무카페인 무설탕 무색소의 건강 음료시장을 선도할 히트 음료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블랙보리의 성공에는 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경영’도 한몫했다. 조 대표는 평소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즐겨 하는 경영자다. 그는 “어느 날 배우 유준상 씨가 블랙보리를 많이 마시는 걸 알게 됐고, 생일 기념으로 소속사에 제품을 보냈는데 그 과정을 팬들이 자연스럽게 실시간 중계하면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후 다른 연예인 팬클럽들이 조 대표 ‘담벼락’에 ‘우리 스타도 블랙보리 좋아한다’는 글을 남기면서 인증샷 릴레이가 시작됐다.
음료 연대기의 끝은 차(茶)
20여 년간 물을 다루는 일을 하다 보니 물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된 것도 이해가 된다. 조 대표는 “신생아 때는 몸의 99%가 물이고 성인은 70%가 물인데, 몸에서 수분이 50% 아래로 빠져나가면 목숨이 다한다”며 “물을 다룬다는 것은 인류의 생명을 다루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국내 음료시장은 90% 이상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 중 10%는 일본 음료 카피 제품이다. 연간 2조5000억원 규모 음료 시장에서 한국의 음료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음료업체들은 자체 생산보다 수입 판매에 더 열성적이다. “일본은 전체 음료시장 40조원 중 차(茶)가 9조원 정도를 차지합니다. 우리나라도 3조8000억원의 음료 시장에서 차가 1조원까지는 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차 시장은 3500억원 정도인데, 잠재력이 크다는 말이지요. 보리차가 이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겁니다.”
조 대표는 지금껏 써온 음료 연대기의 종착지를 ‘차’로 삼고 있다.
블랙보리는 미국 중국 베트남 일본 홍콩 등 10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식사를 마치며 그는 블랙보리를 출시할 당시 지은 시 ‘블랙보리’를 읊었다.
‘흑색바람이 분다/진짜 보리차가 왔다/끓여도 시원한 보리/진하고 깔끔한 맛/까만 알갱이에/금빛 까칠한 수염/햇살받아 눈부신/땅끝마을 검정보리/해풍에 날아온/고향내음 보리내음/몸과 마음 적시며/모든 갈증 풀고자/도도한 기품으로/블랙보리가 온다.’
■하이트진로음료는…
하이트진로음료는 하이트진로의 100% 자회사다. 1982년 설립된 미주만주식회사가 모태로 지금까지 먹는샘물, 석수, 퓨리스 등 생수사업을 주로 해왔다. 2006년 진로 생수사업부문에서 물적분할된 석수가 같은 해 5월 하이트맥주에서 물적분할된 퓨리스음료를 합병하며 지금의 회사가 됐다. 조운호 하이트진로음료 대표가 2017년 취임하며 블랙보리, 새벽헛개 등을 출시했다. 위스키와 소주 등에 섞는 음료인 토닉워터도 이 회사 제품이다.
■조운호 하이트진로음료 대표 약력
△1962년 전남 해남 출생
△1988년 경성대 회계학과 졸업
△1995년 웅진식품 마케팅부장
△1999년 웅진식품 대표
△2005년 웅진식품 부회장
△2006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석사
△2006년 세라젬그룹 부회장
△2009년 얼쑤 사장
△2017년 하이트진로음료 사장
■조운호 대표의 단골집 강너머
1년 내내 맛보는 목포산 민어회
경기 용인시 기흥역 인근의 강너머는 토속음식 전문점이다. 광주광역시 출신 차영숙 대표가 2000년 11월 문을 열었다. 전남 목포에서 가져온 해산물로 계절마다 메뉴가 다채롭다. 재료에 대한 자부심이 커 대부분의 음식 간은 심심한 편이다. 민어와 홍어가 이 집 대표 메뉴다. 1년 내내 민어회를 즐길 수 있다. 홍어삼합, 홍어찜과 홍어탕, 무안 세발낙지, 전복연포탕, 병어조림 등이 주력이다.
식사류로는 병어조림과 갈치조림, 목포먹갈치구이, 코다리조림 등이 있다. 단골들은 뚝배기에 나오는 매생이국도 별미로 추천한다. 참기름으로 굴을 살짝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인 뒤 매생이를 넣고 후루룩 끓여낸다. 시원한 맛이 강하다. 무안 세발낙지는 3월부터 11월까지만 맛볼 수 있다. 인근 수원CC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소문난 집이다.
병어조림과 갈치조림은 각각 4만원과 7만원이다. 민어회, 홍어삼합, 홍어찜 등은 10만~12만원 선이다. 식사 메뉴로 즐기는 매생이국과 코다리조림 등은 모두 1만원이다.
김보라/김재후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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