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25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 주최로 열린 최고경영자 연찬회 연사로 강연을 하던 중이었다. 윤 전 장관은 “노동시장을 개혁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한 발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며 “정부가 노동개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는지 정말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드는 개혁의 성공 여부에 따라 한국 경제의 운명을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전 장관은 노사의 임금 및 단체교섭 주기부터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는 “임금교섭을 매년하는 나라는 한국 말고는 거의 없다”며 “그러다보니 작년 임금교섭을 못 끝내고 새해가 돼 올해 임금교섭까지 해야 하는 웃지 못할 일도 생긴다”고 꼬집었다. 노동계를 향해서는 “한국만큼 노조하기 좋은 나라가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여러 사안에 이성적으로 양보할 부분을 양보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윤 전 장관은 약 1시간동안 이어진 강연에서 정부 정책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3일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한데 대해서는 “이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경영권이 심각하게 흔들릴 수 있다”며 “개정안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무부가 마련한 상법 개정안에 포함된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다중대표 소송제 도입 등을 거론하며 “이런 제도가 도입되면 자칫 외국 투기자본에 기업 경영권을 다 넘겨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혁신성장을 하려면 규제개혁부터 해야 한다”며 “이해집단의 반대에 밀려 규제개혁을 시작도 못하는 한국의 정치인과 정부 관료는 모두 반성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해 당사자끼리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의 정부 태도도 비판했다. 원격진료와 승차공유, 공유숙박 등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에 대해 정부가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은 채 타협하라고만 하는 건 무책임하다는 지적이다. 윤 전 장관은 “당사자끼리 해결하라는 건 규제를 완화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며 “당사자간 합의가 이뤄진다 해도 여기서 나온 방안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현 정부의 복지 정책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복지 혜택을 늘리는 건 불가피하지만, 복지를 확대하려면 재원이 있어야 한다”며 “재원은 유한하기 때문에 선별적 복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 65세 이상 노인이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는 정책을 거론하며 “당장 이것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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