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원 기자 ] 2008년 히말라야산맥 동쪽에 있는 낯선 국가 부탄의 공무원들이 한국을 찾았다. 반부패방지위원회, 검찰청, 법원 소속이었다. 이들은 국민권익위원회를 찾아 한국의 국가반부패종합계획을 배웠다. 개발도상국에 반부패 제도를 전수하자는 취지였다.
그해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부탄의 반부패지수(CPI)는 10점 만점에 5.2점으로 조사 대상 180개국 중 45위였다. 부탄의 ‘반부패 스승’이었던 한국은 5.6점(40위)을 기록했다. 당시 일본의 CPI(7.3점·18위)를 감안하면 이웃국가 일본을 찾는 게 상식적이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우리의 ‘다소 앞선’ 선진 문물을 배워서 돌아갔다.
10년이 흐른 지금 한국은 부탄보다 부패한 국가로 평가받는다. 청출어람이다. 지난 29일 발표된 2018년 대한민국의 CPI는 100점 만점(2012년부터 변경)에 57점으로 나타났다. 180개국 중 45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30위에 불과한 초라한 성적표다. 부탄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작년 부탄의 CPI는 68점(25위)으로 선진국인 프랑스(21위)와 미국(22위)을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는 자아도취에 빠졌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작년 수치가 발표된 날 “역사상 가장 높은 평가”라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역대 최고점이었던 2012년(56점)에 비해 불과 1점 높고, 전년보다 3점이 올랐을 뿐인데도 말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한국 반부패지수가 하락한 점을 감안하면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란 지적도 나온다. 실제 작년 CPI 50위 국가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36개 국가의 점수가 올랐다.
한국과 공동 45위를 기록한 국가들의 면면을 보면 더욱 얼굴이 뜨거워진다. 이 중 15개 섬으로 이뤄진 인구 56만 명의 카보베르데는 기후 탓에 무인도를 제외한 10개 섬 중 4곳에서만 농사가 가능하다. 한국 영토의 절반보다 작은 도미니카는 코코넛과 설탕이 주된 수출품으로 국내총생산(GDP)이 한국 대비 20분의 1 수준이다. 자랑은 부탄을 다시 뛰어넘은 뒤 해도 늦지 않다. 국민이 바라는 공정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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