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미끼 금융 취약계층 유혹
작년 10~11월 전국 10여곳 생겨
금융업계 "신규 투자자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 이자·배당 주는 전형적인 폰지 사기 형태"
대부분 무등록 다단계 업체
피해 발생해도 보상받을 길 없어
[ 조아란 기자 ]
가상화폐를 앞세운 신종 다단계 지급·결제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금융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큰 피해가 우려된다. 이들은 선결제 금액을 투자금 형태로 미리 내면 돈을 수십 배로 불려준다는 다소 황당한 문구를 내걸고도 이미 수십만 명의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투자금을 돌려줄 때 비트코인으로 주겠다며 투자자를 유인하는 업체도 있다.
“가입만 해도 큰돈 번다”
“100만원 투자해서 1년이면 1억원이 된다.” 한 신종 지급·결제업체가 내건 문구다. 언뜻 봐도 실현 불가능한 수익률이지만 ‘가상화폐를 구현하는 신개념 페이’라는 등의 그럴듯한 말로 홍보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의 한 오피스텔은 A업체 투자설명회를 듣기 위해 모인 50여 명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설명회가 시작되자 머리가 희끗한 60~70대 노인들이 ‘인공지능’ ‘블록체인’ 같은 단어를 수첩에 적으며 강사의 말을 경청했다. 뒤늦게 온 참가자들은 문 밖에 접이식 의자를 펴놓고 앉아 귀동냥을 했다.
강사는 자사의 페이 시스템을 설명하면서 “이것만 활용해도 부자가 될 수 있다”며 “페이 시스템에 돈을 충전한 뒤 ‘예금방’에 넣으면 포인트가 10배 늘어나고 매일 0.25%를 포인트로 지급한다”고 했다. 10만원을 충전한 뒤 예금방에 옮기면 포인트가 100만원어치가 되고 첫날 2500원(100만원×0.25%)어치, 둘째날 2468원어치(98만7500원×0.25%) 포인트가 나오는 식이다. 이 포인트를 예금방에 넘기면 또 10배가 되기 때문에 ‘무한 자가발전’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이 남성은 또 ‘소개수당’과 ‘영업수당’을 설명하면서 “다른 회원을 소개만 해도 큰돈을 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다단계 페이업체는 지난해 10~11월 10여 곳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그러나 일단 페이 시스템에 돈을 충전하면 포인트만 쌓일 뿐 현금화하기 어렵고 가맹점이 적어 포인트를 쓰기도 쉽지 않다.
경찰, 공정위 의뢰 받아 수사 나서
서울 동작경찰서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의뢰를 받아 신종 페이업체의 선두 격인 C업체 수사에 들어갔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동작경찰서에 공문을 보내 방문판매업 위반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신종 페이업체의 영업방식이 ‘전형적인 형태의 폰지사기’라고 설명했다. 폰지사기란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다단계 금융사기를 말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페이 시스템 안에서 불어나는 돈을 일부라도 현금화하려면 신규 투자자를 빠른 속도로 유입시켜야 한다”며 “추천인의 추천인 등 상위 ‘라인’에 있는 사람에게도 롤업수당(하위 판매원에게서 공제해 상위 판매원에게 지급하는 수당)을 주는 것처럼 신규 가입을 촉진하는 형태로 영업구조를 짜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신종페이는 ‘미끼’고 실상은 다단계 사기”라고 설명했다.
이들 신종 페이업체 대부분은 공정위에 등록하지 않은 무등록 다단계 업체로 드러났다. 동작경찰서가 수사 중인 C업체 역시 공정위에 등록된 업체가 아니다. 따라서 이들의 모든 영업 행위가 불법이고, 불법 다단계 피해자는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홍보에 들어간 문구 중 상당수가 거짓인 사례도 적지 않다. 한 페이업체는 자사의 시스템 개발자가 구글 엔지니어 출신인 ‘마크 밀로’라고 주장하지만 구글 측은 “그런 사람이 근무한 적 없다”고 밝혔다. A업체는 한 카드사와 제휴 마케팅을 하고 있어 설이 지나면 이 카드사의 모든 가맹점에서 포인트를 사용해 결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카드사는 “사실무근”이라고 답했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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