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지에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상이 지구촌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지난달 말 말레이시아 정부는 중국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일환인 동부해안철도 사업을 중단시킨 데 이어 몰디브에서는 일대일로 관련 중국의 뻥튀기 비용 산정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브라힘 아미어 몰디브 신임 재무장관은 “이전 정권이 중국에서 제시한 프로젝트 비용이 터무니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약을 체결했다”며 일대일로 사업에 부정부패가 얽혀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몰디브는 지난 2017년 말 압둘라 야민 전 대통령이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친중국 성향의 야민 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몰디브 섬 곳곳에 사회간접자본 시설을 건설하는 대규모 계약을 맺었다. 몰디브에서는 현재 중국계 건설 회사들이 병원, 철도, 다리 등을 건설하고 있다.
지난 11월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이뤄낸 이브라힘 모하메드 솔리 몰디브 대통령은 전임 정권이 중국과 불공정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이 과도하게 부풀려진 프로젝트 비용을 제시했음에도 전 정권이 제대로 따지지 않고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아미어 장관은 “수도 말레에 건설된 병원의 경우 1억4000만달러 비용을 중국 건설사에 지불했는데, 다른 업체는 3분의 1 수준인 5400만달러면 충분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몰디브가 일대일로 사업을 위해 중국에 갚아야 할 돈은 총 30억달러(약 3조3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몰디브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2를 넘는 수준이다. 관광 외에는 별다른 수입원이 없는 인구 44만명의 몰디브로서는 큰 부담이다. 일대일로 사업이 완료되기 전에는 원금을 상환할 수도 없어 부채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몰디브는 사업비가 부풀려졌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중국이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몰디브 정부는 재협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국이 채무의 일정 부분을 면제해주고 이자율을 낮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2017년 몰디브와 체결한 계약을 일대일로 사업의 성공사례로 대대적인 홍보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몰디브가 중국을 비판하고 나서면서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더 확산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말레이시아는 중국 주도로 진행하던 파이프라인 건설 사업과 동부해안철도 사업을 얼마 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파키스탄 정부도 몰디브처럼 전 정권이 중국과 체결한 일대일로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미얀마는 불과 며칠 전에 중국이 연계된 수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중단한다고 공표했다.
중국은 몰디브의 재협상 요구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시장 금리보다 낮은 이자율로 돈을 빌려주고 사업도 추진했는데 몰디브가 사실과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몰디브의 전 정권과 일대일로 사업과 관련된 채무상환 계획을 세밀하게 합의했다”고 밝혔다.
몰디브의 반발은 커지고 있다. 몰디브 정부는 부풀려진 사업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모든 건설 프로젝트의 원가를 다시 산정해 그에 걸맞는 비용을 내겠다고 밝혔다. 아미어 장관은 “중국으로부터 받은 만큼만 돌려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대일로 사업은 일반적으로 중국 국유은행이 인프라 펀드를 통해 저개발국에 차관을 제공한 뒤 중국 기업이 건설과 운영을 맡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완공 뒤 얻는 운영 수익으로 부채를 상환해야 하는 구조다. 하지만 사업 채산성을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한 아시아 저개발국들이 무리한 투자 계획을 수용하면서 재정난에 빠지고 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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