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원두 무역기업인 '베넷'에 근무하며
멜버른 듀크스커피 바리스타로 활약
스타벅스를 무릎 꿇린 나라. 호주의 커피 문화는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50년대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호주에 에스프레소를 퍼뜨렸다. 1970년대 보헤미안 예술가들은 멜버른을 중심으로 그들만의 커피를, 동네 카페에서 마시기 시작했다. 호주식 커피인 플랫화이트와 롱블랙은 세계 주요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글로벌 커피 메뉴가 됐다. 카페라떼와 아메리카노와 비슷한 형태지만 맛은 전혀 다른 맛을 낸다. 이유는 싱싱한 생두에 있다. 오늘도 멜버른 항구에는 하루 300만 명이 마실 수 있는 생두가 들어온다. 도시에는 수백 개 카페와 로스터리가 각각의 개성으로 공존한다. 스페셜티 커피 문화도 10여년 전 일찌감치 시작됐다.
이런 커피강국에서 4~5년 전부터 한국인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호주 국가대표 커피 챔피언은 수년 째 한국인이 차지하고 있고, 이름난 카페와 로스터리에서 한국 청년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자신의 브랜드를 창업한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멜버른과 시드니에서 한국인 바리스타와 로스터들을 인터뷰했다.
②고현석 듀크스커피 바리스타
멜버른의 아침은 커피와 함께 깨어난다. 동네 카페들은 오전 7시면 모든 준비를 마친다. 사람들은 출근길에 단골 카페에 들러 ‘모닝 커피’로 하루의 에너지를 채운다. 카페가 문 닫는 4~5시까지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하루 서너 번씩 같은 카페에서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사람들도 많다. 멜버른 10대 카페를 꼽으면 늘 상위권에 드는 곳. 플린더스레인에 있는 듀크스커피 로스터스(Dukes Coffee Roasters)얘기다. 이 카페의 커피바는 수년 째 ‘해리’가 지키고 있다. 해리는 2012년 호주로 건너간 12년차 바리스타 고현석 씨(35)다.
멜버른에 며칠 머무는 동안 그를 두 번 만났다. 처음 만난 건 보크스트리트의 ‘카페내틱스’에서다. 고 씨는 후배 김민기 씨가 수석 바리스타로 있는 이 카페를 잠시 빌려 2주 뒤 있을 호주커피챔피언십 준비에 열중하고 있었다. 같은 원두를 각각 미세하게 달리 추출해 맛과 향과 수율 등을 체크하고 있었다. 방해하는 것 같아 인터뷰를 머뭇거리자 그는 “어차피 자정까지 할 거라서 괜찮다”며 시원하게 웃었다.
그는 2015년과 2016년에 이미 컵테이스터스 부문에서 두 차례나 호주 국가대표로 선발돼 세계 대회에 출전했다. 컵테이스터스는 아주 비슷한 3잔의 커피를 놓고 맛을 본 뒤 커피의 종류를 정확히 구분해내는 대회다. 셀 수 없는 연습은 물론 완벽한 컨디션 조절로 대회 당일 미각을 완전히 깨워야 한다. 총 8번의 기회가 있는데 고씨는 대회 당시 8개를 순서대로 모두 정확하게 맞췄다. 그는 언젠가부터 매년 열리는 바리스타 대회가 가까워지면 몇 주에 걸쳐 미각을 예민하게 유지하기 위해 향과 간이 거의 배제된 ‘무미(無味)’의 음식을 먹는다. 대회가 가까워지면 얼굴이 핼쑥해지고, 끝난 뒤에 다시 살이 오르는 걸 반복한다. 다음 주에 열리는 대회에서 그는 필터커피를 내리고 이를 심사위원들에게 프레젠테이션하는 ‘브루어스컵’에 도전한다.
고씨가 처음부터 호주에서 커피로 이름을 알렸던 건 아니다. 제주 출신인 그는 커피와 와인에 관심이 많아 20대 중반쯤 무작정 서울로 왔다. 한국의 한 로스팅 카페에서 우연히 일하게 됐고, 4년 만에 점장 자리에 올랐다. 서른 살이 가까워지자 한국을 벗어나 막연히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와 자신 있게 카페에 이력서를 냈다. (물론 커피농장, 바나나 농장 등에서 일한 경험도 있다.)
“서울의 카페에서 점장까지 지냈는데 그때는 술술 잘 될 줄 알았어요. (멜버른이 그렇게 커피로 유명한 도시인 줄도 모르고) 무모했던 거죠. 영어가 가장 큰 벽이었어요. 카페 대표들은 이력서 보고 일단 와서 해보라고 한 뒤 2시간 정도 실제 커피바에서 일하는 걸 지켜보거든요. 말을 제대로 못하니 사실 처음엔 여러 번 퇴짜도 맞았습니다.”
오기가 생겼다. 허드렛일부터 다시 시작했다. 마치 한국에서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는 “호주에서 바리스타라는 직업은 서비스업보다는 전문기술직에 가깝다”고 했다. 다른 일자리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에서 바리스타 1명이 하루 커피 몇 십 잔 내릴 때 멜버른에선 1명이 300~500잔 만드는 건 기본이다. 숨쉴 틈도 주지 않는다. 숙련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고, 반대로 한 번 마음먹고 시작하면 단기간에 실력이 크게 오르는 일이기도 하다. 먼저 호주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필드에 뛰어들려면 영어 공부는 아무리 더 하고 오라고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는다”고 했다.
카페 견습생부터 시작해 온갖 허드렛일을 하던 그는 조용히 챔피언십을 준비했다. 2014년 컵테이스터스 챔피언인 강병우 에이커피 대표에게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 배움의 시간이 쌓인 결과, 2015년과 2016년 그에게 호주 챔피언 타이틀이 돌아왔다.
한 번도 어렵다는 챔피언 타이틀을 2년 연속 따내고도 그는 계속 도전 중이다. 한 번의 우승은 대형 로스터리의 스카우트 계약, 월드 투어 등의 기회가 자연스레 찾아온다. 그에게도 그랬다. 한 순간에 삶이 달라졌고, 동료들과 카페 손님들의 시선도 바뀌었다. 하지만 그는 우승한 뒤 더 겸손해졌다. 그 타이틀에 걸맞게 더 커피를 공부하고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스카우트 제의 등을 모두 거절하고 그는 호주 커피 문화의 뿌리가 되는 회사에 들어갔다. 호주의 100년 기업으로 커피 생두와 차 무역을 하는 ‘베넷’에서 생두 트레이더, 샘플 커퍼와 로스터 등의 여러 역할을 맡고 있다. 목요일과 토요일에는 새벽잠을 떨치고 일어나 듀크스커피로 향한다. 그의 계속되는 대회 출전은 아마도 남을 이기기 위한 승부욕 때문이 아니라 나를 스스로 검증하고 나아가게 하려는 목적이 아닐까.
목요일 늦은 오후 듀스크커피의 커피바 안에는 전혀 다른 모습의 해리가 있었다. 카페를 찾는 사람들은 반갑게 그의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묻고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온 단골인가보다”고 살짝 물었다. 웃으며 돌아온 그의 대답은. “저 분은, 오늘만 다섯 번째 오는 거에요.”
멜버른=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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