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에게 특히 워킹맘에게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은 그야말로 직장생활 최고의 위기다.
아이가 어린이집, 유치원을 다닐때는 내가 아이 옆에 붙어있어야 좋은 엄마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옆에서 하나하나 챙겨주지 못해서 아이가 잘못될까 노심초사 걱정하는 건 아이도 나태하게 만들고 나부터 프로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는 스스로 잘 할 수 있다는 믿음, 내가 일을 하는 게 아이에게 죄를 짓는 건 아니라는 그런 당당함이 나를 지탱해 주는 원동력이었다.
근데 이게 웬걸.
아이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건 워킹맘으로 살면서 그동안 겪었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난관이었다.
내가 바빠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선생님이 갖은 배려를 해주시고 친구 엄마들이 케어도 해주고 했던 때와 달리 초등학교라는 조직은 느껴지는 위압감의 정도가 달랐다.
'더 이상 당신 아이는 하나하나 돌봐줘야 하는 어린애가 아니다'라는 공교육 첫걸음 대전제 뒤에는 보이지 않게 아이를 완벽하게 챙기고 돌보는 부모가 든든하게 지탱하고 있어야 했다.
아이 입학식 당일 간단한 행사와 준비물 안내장 배포 후 11시쯤 하교했다. 교문으로 우르르 하교하는 아이들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앞으로도 저렇게 수업 후 엄마 손 잡고 집으로 가는데 우리 아이는 매일 돌봄교실로 향해야 하겠구나. 현실을 자각하니 뭔가 나는 다른 엄마들과 계층이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다니던 길도 학교 등굣길이 되고 난 다음에는 의미가 남다른 길이 된다.
아이에 따라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항상 현관 앞에서 유치원 차량을 타고 내리던 아이가 도보로 학교와 집을 오간다니. 생각만 해도 불안해 미치겠다.
길가에 튀어나온 돌뿌리 하나도, 운전 중 평소 보행자 없으면 차량 적색 불에도 살짝 지나가곤 했던 그 집 앞 좁은 횡단보도도 우리 아이를 언제 위협할 지 모르는 위험 요소였지 않은가! 부모가 할 수 없다면 조부모나 시터가 나서서라도 적어도 한 달 가량은 누군가 등하교를 케어해주는 것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아무리 '내 아이는 잘 할 거야' 믿는 낙천적인 (나와 같은) 엄마라 해도 불안해서 회사에서도 내내 좌불안석할 수 밖에.
돌봄교실은 잘 찾아갔는지, 하다못해 화장실 이용 하나까지 걱정되는 일 투성이다.
일을 하면서도 몸이 공중에 붕 떠있는 듯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거 퇴사각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최대 고비는 좌변기가 아닌 수세식 변기가 설치된 아이 학교 화장실이었다. 전교생이 3000명에 달할 정도의 학교인데 오래된 시설이다 보니 조금씩 개선되는 중이라 해도 일부는 좌변기, 대부분은 쪼그려앉는 수세식 변기가 비치돼 있었다. 아이가 '쉬는 시간이면 좌변기에 아이들이 몰리기 때문에 남는 것은 수세식 변기뿐'이라 말해서 나는 또 경악했다.
아이는 평생 한 번도 수세식 변기를 이용해 본 일이 없었다.
수세식 변기라는 것이 어른들도 잘못하면 자칫 옷에 소변이 튈 수 있는데 그걸 얘가 혼자서? 아 생각만 해도...
그렇다고 쉬는 시간이 한정적인데 좌변기가 없으면 볼일을 참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날부터는 퇴근 후 집에서 아이를 붙잡고 쪼그려 앉아 일보는 연습을 시켰다.
옷을 어떻게 단단히 잡아야 하는지 그 와중에 바짓단이 땅에 닿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도 수없이 반복했다.
야근하고 집에 갔는데 뒤늦게 본 알림장에서 준비물이라도 발견하는 날에는 그야말로 멘붕이다.
야밤에 문 연 대형마트 찾아가는 등 야단법석을 피우는 날들의 연속.
초등학교 1학년 엄마가, 그것도 워킹맘이 주변에 친한 엄마들 없이 혼자 케어를 한다는 것은 맨몸으로 쓰나미를 맞는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엄마들 모임에 꼭 참석하고 몰려다니며 정보 공유까지는 아니라 해도 낮 시간에 알림장이나 준비물 공유해 줄 수 있는 정도의 관계는 기필코 만들어 놔야 한다.
이전 에세이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지만 아이 입학 후 2주간은 휴가와 반차를 밥 먹듯이 내야 함도 수반된다.
돌봄교실 추첨, 방과후 수업 신청 및 추첨까지 학부모가 학교에 가야 할 일이 하루 걸러 있었기 때문이다.
왜 워킹맘들이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가장 많이 퇴사하는지 이제야 실감하게 됐다.
만약 누군가 출산장려 정책 중 어떤 게 필요하냐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초등학교 입학하는 자녀 둔 부모에게 무조건 3개월 휴직 허용하기'라고 말할 것이다.
12년의 의무교육의 첫 발을 내딛는 초등학교 입학 때만큼 아이에게 엄마 아빠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때가 또 없을 것이다.
학교 화장실 이용 하나도 벅찬 아이를 옆에서 돌봐줄 수 없는 부모는 말 그대로 '죄인'이 된다.
선생님 한 분이 반 아이들 전체를 챙겨야하니 신경쓰자 다짐하면서도 난 종종 야근후 다음날 아침에서야 알림장을 보거나 수업 준비물을 빠뜨리기도 했다.
난 내 아이 두 명 케어하는 것도 이렇게 혼이 빠지는데 26명의 아이를 봐야 하는 선생님을 도와드리진 못할 망정 이 무슨 낭패란 말인가.
어제 제출했어야 할 신청서가 아직 아이 가방 클리어파일에 고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얼굴이 화끈 화끈 달아올랐다.
'아이가 학교에서 혼이 났다' 이건 내가 아무리 회사에서 좋은 성과를 얻는다 해도 보상받지 못할 만큼 엄마로서 자책감이 드는 일이다.
나는 그 와중에 의욕적으로 아침 일찍 나가서 깃발 들고 횡단보도 등교지도하는 녹색어머니 활동을 신청했다.
어느 책에선가 워킹맘이라고 학교 행사에 나몰라라 해선 안된다는 구절을 새겨두고 있었다.
첫 학부모 모임에서 다들 손을 들어 독서지도다, 도서관도우미다 신청하는데 나만 아무것도 안 하면 우리 아이는 케어 되지 않는 아이로 영영 낙인 찍힐 것만 같은 그 막연한 불안감이 내 팔을 번쩍 들게 했다. 그나마 1년에 4~5일 정도만 아침에 일찍 나가 하면 된다니 출근도 할 수 있고 다행이지 않은가.
첫 녹색어머니 봉사하는 날.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 서서 엄마 손잡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출근하고 난 뒤 내 아이가 이 길을 혼자 걸어 학교에 가는구나.
내 아이는 친구들이 매일 엄마랑 등교하는 걸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혼자 등교하다가 찻길에서 위험한 일이라도 생기는 건 아닌지, 그 와중에 빨리 끝내고 회사 가야되는데 등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엄마 오늘 녹색어머니 하는 날이니까. 이거 입고 이거 먹고 이따 학교 혼자서 가야 돼. 알았지? 나 나간다."
후다닥 나오느라 아이랑 눈도 제대로 못 맞춘 오늘 아침이 스쳐 지나간다.
얼마 뒤.
"엄마~~!!"
저 멀리서 아이가 신발주머니를 달랑 달랑 흔들며 나에게 달려온다.
아이는 등굣길에 모자를 쓰고 노란 녹색어머니 조끼를 입은 내가 신기한지 마냥 웃으며 대롱대롱 매달린다.
그렇게 아이를 쳐다보고 있으니 새삼 아이 얼굴이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맺힌다.
"엄마 믿음직스럽지? 내가 친구들 안심하고 지나가라고 여기 지키고 있었어. 깃발을 내리면 지나가는 차가 이걸 보고 멈춘다. 볼래?"
"와. 엄마 멋있어."
아이는 학교생활에 하루가 다르게 적응해 갈 것이고 나도 얼마간 말랑해지고 불안해졌던 마음을 다잡고 다시 회사 생활에 매진하게 되겠지.
"그래. 지금껏 잘해왔는데 뭐. 믿는 대로 잘 될거야."
마음이 약하거나 슬픈 엄마는 아이를 더 힘들게 할 뿐이다. 워킹맘의 하루하루를 지탱해주는 '못된 마음'에 다시 화락화락 불을 지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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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선생님이 알려준 입학시 유의사항
-아이에게 반드시 고무줄 바지를 입혀주세요. 화장실에 가서 실랑이 하다 실수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화장실에서 혼자 뒤처리 하는 법도 꼭 알려주세요.
-알림장 확인은 필수. 혼나면 아이 자존감이 떨어집니다. 준비물, 숙제 자기가 알아서 하는 습관을 들여주세요.
-엄마들 모임에 참석해서 친한 엄마를 사귀어 두세요. 하지만 너무 몰려다니고 그러면 득보다 실이 많다는 점도 명심.
워킹맘 육아에세이 '못된 엄마 현실 육아'는 네이버 부모i판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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