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기자들의 '주말 사용법' (8·끝) - 실내 암벽등반
스파이더맨 된 듯 암벽에 착~
발 디딜 때 발끝에 힘주기 편하게
신발 사이즈보다 작은 암벽화 신고
이동할 땐 손으로 암벽 홀더 움켜쥐어야
힘 최대한 덜 쓰고 매달리는 게 요령
[ 이우상 기자 ]
“회원님은 제가 가르쳐본 사람 중 다섯 손가락에 꼽힙니다.”
헬스장 트레이너로부터 과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뭐가 좋고 대단해서 들은 말이 아니다. 그가 맡아본 사람 중 몸이 뻣뻣하기로 제일이라는 말이었다.
그런 몸을 끌고 암벽타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제가 몸이 엄청 뻣뻣한데 할 수 있을까요?” 90도로 깎아지른 듯한 실내 암벽을 마주하니, 덜컥 겁이 났다. 살면서 물리 공부보다 암벽등반을 더 오랜 기간 했다는 김두철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71)은 “괜찮으니 일단 올라가 보라”고 권했다. 김 원장은 올해로 암벽등반 58년차다. 베테랑의 말을 믿고 암벽화를 신었다. 과거 중국 여성들의 발을 옭아맸던 전족처럼 발가락들이 구겨져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개중 만만해 보이는 ‘홀더’에 발을 올렸다. 홀더란 잡거나 디딜 수 있도록 돌출된 부분이다. 암벽화는 뜻밖에 갈고리처럼 홀더를 움켜쥐는 듯한 느낌이었다. 양손으로 홀더를 움켜쥐니 몸이 스파이더맨처럼 인공 암벽 위에 달라붙었다.
‘뭐지, 이거 생각보다 할 만하다!’
뻣뻣한 사람도 암벽등반 OK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 실내 암벽에 쉽게 매달릴 수 있게 된 건 암벽화의 도움이 컸다. 암벽화는 평소 발 크기보다 좀 더 작게 신는 것이 포인트다. 발끝을 모아줘 홀더를 디딜 때 더 힘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암벽화 덕분에 갓난아이 주먹만 한 홀더를 디뎌도 꽤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었다.
홀더도 다 같은 홀더가 아니었다. 어떤 홀더는 잡기가 영 좋지 않았다. 반면 어떤 홀더는 굳이 힘을 주지 않아도 손가락이 착 감기는 모양새였다. 김 원장은 “너무 힘자랑만 해서는 오래 매달려 있을 수 없다”며 “최대한 힘을 덜 쓰고 매달리는 게 요령”이라고 조언했다.
좀 더 본격적으로 배워보기로 했다. 서울 방배동에 있는 MCC 실내암벽클럽 장성현 센터장이 도움을 줬다. 맨 아래 있는 두 홀더에 양발을 얹고 엉덩이는 아예 땅에 붙였다. 그다음 배꼽 높이께에 있는 홀더를 짚고 일어났다. 그다음엔 장 센터장이 가리키는 각 홀더를 잡거나 디디며 움직였다. “손이 안 닿겠는데요?”라고 했더니 장 센터장은 “아녜요. 해봐요”라고 시크하게 답했다.
이 순간 느낄 수 있었다. 클라이밍엔 힘 말고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용기 ‘한 방울’이 더 필요했다. 조금 더 과감하게 손을 뻗으니 태평양 건너치만큼 멀리 있는 것 같던 홀더에 손이 닿았다. 다리 쪽 홀더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자세를 낮추세요.” 유연성 때문에 도통 닿을 것 같지 않던 홀더에 발끝이 닿았다. 미끄러질 것 같은데도 도마뱀붙이(일명 ‘게코도마뱀’) 발바닥마냥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장 센터장의 지시에 따라 우측으로, 위로, 다시 우측으로 계속 움직여봤다. 다리를 있는 힘껏 찢어 먼 홀더로 이동하기도 하고 팔을 있는 대로 벌려 높은 홀더를 움켜쥐어 보기도 했다. “좋은 홀더를 잡았으니 팔에 힘을 푸세요. 거기선 매달린 채로 잠시 휴식.” 최대한 팔의 힘을 빼고 손가락 힘으로만 ‘걸려 있는’ 자세가 되고 나니 꼭 나무에 매달린 오랑우탄과 같은 모습이 됐다. 하지만 맞는 자세였다. 나무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오랑우탄이 온몸에 힘을 주고 매달려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잠시 힘을 비축한 뒤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잠깐의 방심으로 떨어지다시피 암벽에서 내려왔다. 더 했다가는 인터뷰를 할 힘이 남아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카페에 와서 곧장 노트북을 켜고 타이핑하려 하니 시프트키가 눌리지 않았다. 새끼손가락이 그만 마비된 것이다.
인생을 걸 만큼 매력적
‘괜히 힘만 들지 않을까’ 생각했던 실내 암벽등반은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시간당 칼로리 소모가 가장 큰 운동으로 꼽힌단다. 다이어트는 물론 코어근육 만들기에도 제격이라는 것.
암벽등반 58년차 김 원장은 이 취미를 ‘인생을 걸 만큼 매력적’이라고 했다. 1961년 중학교 2학년이던 그는 남들이 자신을 공부벌레로만 보는 게 싫어서 암벽타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남들이 오르지 못하는 절벽을 대차게 오르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 뒤 누구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고 했다. 사고도 겪었다. 고2 때는 도봉산 주봉을 오르다 5m 아래로 추락했다. 김 원장은 “무의식중에 줄을 잡았는지 골절은 면했지만 손의 살갗은 다 벗겨져 있었다”고 말했다. 2006년엔 북한산을 선등(선두로 암벽을 오르는 일)하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지기도 했다. 수술 후 재활하는 데 1년 가까이 걸렸지만 그는 여전히 봄만 되면 암벽을 찾는다. 김 원장은 “실내 암벽을 취미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실전파’”라며 “날이 풀려 북한산 인수봉을 오를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과 함께 암벽을 오르는 강영환 씨(59)도 암벽타기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암벽등반 40년차다. 강씨는 “오르는 순간순간 정복감과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에 암벽타기는 ‘정신적인 마약’”이라며 “혼자가 아닌, 함께 오르는 과정 자체도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고희(古稀)를 넘어선 나이지만 또래가 흔히 앓는 고혈압이나 당뇨가 없다고 했다. 건강의 비결은 아무래도 암벽등반이 아니겠냐는 말이었다. 그는 “과감한 동작을 해야 몸이 자유로워진다”며 “공포와의 싸움이 이어지고, 이를 이겨낼 때마다 성취감을 느낀다”고 했다. ‘암벽등반 예찬론자’가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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