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경쟁력 엔진은 기초과학
여의도 면적의 62%
런정페이 회장 "구글과 경쟁하려면 그에 걸맞은 R&D 환경 만들라"
유럽도시 콘셉트…108개 건물
순환 전차 15분마다 돌아
이미 연구원 1만7000여명 근무
기술주도 혁신에 사활 건다
R&D투자, 매출의 15%…15.5兆
글로벌 5G 기술특허 23% 차지
물리·수학 등 기초과학 집중 투자
[ 노경목 기자 ]
전차를 타고 내다본 바깥 풍경은 수십 초 사이에 몇 번씩 바뀌었다. 18세기 로코코 양식으로 지어진 프랑스식 흰색 건물에서 붉은색 중세 이탈리아 건축물로 시대와 장소를 넘나들었다.
올해 말 완공 예정인 화웨이 시춘 연구개발(R&D) 캠퍼스의 위용이다. “미래 화웨이가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기업들과 경쟁하려면 그에 걸맞은 R&D 환경이 필요하다”는 런정페이(任正非) 창업자 겸 회장의 지론 그대로였다.
삼성과 LG 압도하는 규모
시춘 R&D 캠퍼스 부지(180만㎡)는 화웨이 통신장비·스마트폰 공장이 있는 중국 공업도시 둥관에 마련됐다. 둥관 시정부가 몇 안 되는 관광지 중 한 곳인 쑹산호수 주변의 땅을 제공했다. 런정페이 회장이 시춘 캠퍼스 조성에 내건 조건은 두 가지였다. 전체 캠퍼스가 넓은 녹지공간을 확보한 저밀도로 개발돼야 한다는 것, 또 하나는 건물 하나에도 인류의 지혜와 노력이 축적돼 연구원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양식 주요 건축물이 중국에 대부분 지어진 만큼 벤치마킹 대상은 서양 건물로 정했다. 건축가들은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볼로냐, 영국 옥스퍼드, 독일 하이델베르크, 체코 체스키크룸로프 등 유럽 12개 도시의 건축물 콘셉트를 바탕으로 108개 건물을 설계했다. 건물들은 스위스식 전차가 15분마다 7.8㎞ 구간을 운행하며 연결한다. 면적은 서울 여의도의 62%에 해당한다.
시춘 캠퍼스 내 상당수 건물은 완공돼 있었다. 지난해 7월부터 이주를 시작해 연구원 1만7000여 명이 일하고 있다. 전체 캠퍼스가 완성되면 R&D 부서와 사내 교육기구인 화웨이대학 등 핵심 기술 관련 부서는 모두 선전 본사에서 이곳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5G 기술, 경쟁자에 1년 앞서
시춘 캠퍼스에는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올라서려는 화웨이의 고민이 녹아 있다. 단순히 기존 기술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다. 화웨이는 고객의 수요를 우선으로 R&D를 해왔다. 지나치게 무겁고 큰 통신장비를 두 개의 제품으로 나눠 무게와 부피를 크게 줄인 뒤 2004년 출시한 DBS가 대표적이다. 이 제품을 무기로 화웨이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시장을 제패했다.
2000년대 중반 전략을 바꿨다. ‘기술 주도 혁신’에 사활을 걸기 시작했다. 장신위 화웨이 기술전략본부 부사장은 “고객이 다른 업체들의 장비에서 느끼는 불만을 해결해주는 것만으로는 결코 추격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을 선도하려면 미래에 사용될 기술이 무엇인지 먼저 판단하고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단지 문제의식에 머물지 않았다. 경쟁자들보다 한발 앞서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에 투자했다. 4G가 막 상용화되기 시작한 2009년부터 10년간 20억달러(약 2조2500억원)를 관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쏟아부었다. 화웨이가 5G 기술표준 특허의 23%를 차지하며 글로벌 통신장비 업체 중 5G 기술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 배경이다. 차이멍보 글로벌마케팅 담당 부사장은 “5G 기술만 놓고 보면 경쟁자 대비 12~18개월 앞서 있다”고 주장했다.
“혁명적 혁신 일궈낼 것”
이 같은 성과의 기반은 R&D 투자다. 2017년 기준 R&D 투자 규모가 138억달러(약 15조5000억원)로 전체 매출의 14.9%에 달했다. 이 중 15%를 수학, 물리학 등 기초과학 분야에 투자했다. 미국 기업 등에 비해 소프트웨어 경쟁력도 밀린다고 판단해 지난해 20억달러를 투자했다. 장 부사장은 “우리는 한 분야에서 성공하면 다른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타 기업과 다르다”고 말했다. 통신 관련 기기에 집중하며 기초과학 수준부터 더 깊은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화웨이는 4만 명의 직원이 지분 60%를 나눠 가진 민영기업”이라며 “국가나 지방정부에 의존할 수 없다는 절박감이 치열한 R&D로 이어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둥관·선전=노경목 특파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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