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정점 오른 김명수…2兆 사모펀드 굴린 박병무

입력 2019-02-12 18:53   수정 2019-02-13 08:58

Law & Biz
대한민국 법조인열전 (11) 도전정신 강한 연수원 15기

동기 절반이 변호사로 첫발…주요로펌 대표 중 15기가 6명
연수원 수료식때 3명 탈락하자 집단농성 유명…동기애 남달라

반골기질 강한 김명수 대법원장, 진보적 판사들의 '대부'격 평가
사법부 혼란 온몸으로 막은 안철상, '서오남' 대법관 인사관행 깨뜨려

美워싱턴 韓人로펌 만든 박해찬, 삼성·네이버 국제특허분쟁 맡아
'특수수사의 교본' 곽상도 의원, '범죄전쟁' 때 조폭 두목 첫 검거



[ 안대규 기자 ]
사법연수원 15기에는 김명수 대법원장과 안철상 대법관, 이종석 헌법재판소 재판관 등 현재 사법부 조직 내에서 최정점에 오른 인물이 많다. 판·검사만 ‘출세’의 기준으로 보던 1985년 연수원 수료 당시 절반(300명 중 150여 명)은 변호사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 정도로 ‘도전정신’도 강했다. 국내 대형 법률회사(로펌)와 민간 영역에서 ‘개척자’가 유달리 많이 나온 이유다. 현재 주요 로펌 대표 중 15기가 6명이나 된다.

15기는 ‘동기애’도 남달랐다. 1985년 연수원 수료식 무렵 2~3명가량의 탈락자가 발생하자 집단으로 교수에게 항의하고 농성했다. 군대에서도 법무관 및 장교 훈련을 받을 때 한 동기가 술을 먹고 내무반에서 사고를 치면서 징계가 논의되자 연수원 15기 122명 전원이 ‘자퇴서’를 낸 일화도 유명하다. 훈련 시 발생한 ‘군대식 얼차려’에 대해서도 ‘가혹행위’라며 공동으로 훈련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종석, 영국신사 별명 원칙주의자…'윗선'지시 거부한 김광태

2017년 9월 비(非)대법관 출신으로는 처음 사법부 수장에 임명된 김 대법원장은 진보적 판사들의 ‘대부’ 격으로 평가받는다. 진보성향 판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한 연수원 동기는 “어릴 적부터 ‘반골기질’을 타고나 법원 조직에 불만이 많았다”며 “술을 먹을 때면 속에서 ‘불덩이’가 올라온다”고 평했다. “주량이 세고 ‘취중진담(술을 먹으면 속마음을 털어놓는)’ 스타일”이라는 평도 있다. 연수원 동기인 유기준 자유한국당 국회의원과는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유신체제에 항거하다 유치장에 나란히 갇힌 경험도 있다. ‘법조인 가문’을 일궈 딸과 아들은 물론 사위와 며느리, 사돈이 모두 법조인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의혹에 대해 지난해 6월 ‘검찰 수사’를 통한 해결을 결정하면서 ‘사법부 신뢰 회복’이라는 과제를 안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작년까지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안철상 대법관도 김 대법원장 동기다. 그는 작년 6월 검찰 수사로 촉발된 ‘사법부 대혼란기’에 사법부 내 갈등을 봉합하고 정치권의 법관 탄핵, 특별재판부 구성 등 공세를 온몸으로 막아냈다는 평가다. 대구고를 나와 어려운 형편 탓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건국대 법대에 진학했다. 현 정부 들어 대법관 인사 관례인 ‘서울대 출신 50대 남성(서오남)’을 깬 첫 사례가 됐다. 행정법과 민사집행법 권위자로 평가받는다.

작년 8월 한국당 추천 몫으로 헌재 재판관이 된 이종석 재판관은 동기들로부터 ‘영국신사’ ‘도덕교사’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원칙주의자’다. 서울중앙지법 파산 수석부장판사로 근무하며 회생기업의 조속한 시장복귀를 돕는 ‘패스트트랙’을 도입하는 성과를 냈다.

연수원 수석은 경찰청 경찰위원장인 ‘행정법 전문가’ 박정훈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사법시험(25회) 수석은 양승태 사법부 시절 ‘윗선의 지시’를 거부한 것으로 유명한 김광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차지했다. 김 부장판사는 2016년 광주지방법원장 재직중 법원행정처의 재판개입 시도와 지시를 거절했다. 하지만 이는 법원이 ‘상명하복’조직이 아니고 독립적 재판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해 검찰 논리에 다소 불리한 사례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공정거래 기업자문 30년 안용석, 미국 로펌 개척한 박해찬

진로가 남달랐던 인물로는 박병무 VIG파트너스 대표와 박해찬 미국 특허 전문 로펌 HCPA 대표가 꼽힌다. 박병무 대표는 1980년 서울대 수석 입학, 21세 사법시험 합격, 서울대 수석 졸업 등으로 ‘판사’로서 출세가 보장됐지만 김앤장에서 ‘M&A전문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2000년 뉴브리지캐피털의 제일은행 인수를 자문했다. 2006년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 대표로 취임하면서 회사를 정상화시킨 뒤 SK텔레콤에 되판 사례는 아시아 사모펀드(PEF)업계 ‘교과서’로 남아 있다. 그동안 2조원이 넘는 자금으로 동양생명, 비씨카드, 아이리버, 버거킹, 바디프랜드 등 17개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한 국내 PEF업계의 ‘개척자’다.

박해찬 변호사는 변호사 2년차 때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 최대 한인로펌이자 국제특허 전문 로펌인 HCPA를 세운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삼성전자, 네이버 등의 국제 특허분쟁 사건을 맡아온 그는 한국인 변호사 200여 명을 모아 ‘재미한인변호사협회’도 설립했다.

국내 대형 로펌 대표 중엔 15기가 즐비하다. 안용석 광장 경영총괄 대표는 공정거래·M&A·해외투자 등 자문분야에서 30년 넘는 경력을 쌓아왔다. 국제 기준금리인 리보(LIBOR) 담합사건과 퀄컴 표준필수특허 남용 사건 등에서 활약하면서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길태기 광장 대표는 ‘환부만 도려내는 수사’로 인정받은 검사 출신으로 서울남부지검장, 법무부 차관을 거쳤다. 김성진 태평양 업무집행 대표는 건설 부동산 전문가로 한국 화가이자 고려대 디자인조형학부 교수인 정종미 화백의 남편이다. 그는 첼로와 대금, 정악장구, 설장구, 단소를 연주하고 서예와 고전에도 능통해 다방면에 재주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태평양에선 한국지적재산권변호사협회 초대 회장을 지낸 특허법원 수석부장판사 출신 권택수 대표와 방송통신, 에너지 전문가인 오양호 대표도 15기다. 최우영 충정 대표는 한국채무자회생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도산법 전문가다.

김앤장에는 국내 최고 노동법 전문가인 주완 변호사와 기업 구조조정, M&A 경험이 많은 정진영 변호사가 있다. 주 변호사는 1989년 대우그룹 사내변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 기업 노사관련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으며 현재까지 수십년간 고용노동부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자문을 해왔다. 정 변호사는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위기 당시 수십개 기업의 매각과 회생 업무를 도맡아온 기업 구조조정 전문가다.

조양은·김태촌 잡은 남기춘, '차출설'계속 나오는 민변 회장 출신 백승헌

15기 검찰 출신에선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름을 떨친 인물이 많다. 2017년 검찰총장 자리를 두고 현 문무일 총장과의 경쟁에서 밀린 소병철 농협대 석좌교수는 현 정부에서 꾸준히 입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광주제일고, 서울대 법대를 나와 검찰에서 대검찰청 형사부장, 대전지검장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한 그는 연수원 동기 검찰 지망생 중 성적이 가장 우수했다는 후문이다. 검찰 퇴직 후 변호사로 개업해 돈을 벌기보다 대학에서 후학 양성에 전념해왔다.

별명이 ‘검객(劍客)’인 남기춘 변호사는 동기 중 가장 ‘강골(强骨) 검사’로 꼽힌다. 조양은·김태촌 같은 조직폭력배 두목들을 잡아넣었고, 2003년 당시 실세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2004년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2011년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등의 구속을 진두지휘했다. 조선 말 천주교 박해로 순교한 승지(정3품) 남종삼의 종손이어서 강골 DNA를 타고났다는 말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 초기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곽상도 한국당 의원도 ‘특수수사의 교본’이라는 별칭을 얻은 검사 출신이다. 1989년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 당시 전국에 지명수배된 조폭 두목을 최초로 검거해 이름을 알렸다. 이 밖에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는 삼성그룹 법무팀장으로 재직하다 2007년 ‘비자금 조성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도 있다.

15기는 보수에서 진보까지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다. 황정근 변호사는 2017년 헌재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국회 측 대리인 단장을 맡았다. 당시 박 전 대통령 측 변호도 동기인 이중환 변호사가 맡았다. 하창우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 회장(2015~2017년)을 지내며 당시 변호사 권익을 높이기 위해 그의 고교(경남고)·대학(서울대 법대) 선배인 양 전 대법원장과 수시로 각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보수 쪽에는 곽 의원과 해상법 전문가 유기준 의원, 서울중앙지검장 출신 최교일 의원 등 한국당 소속이 많다. 박근혜 정부 시절 주중대사를 지낸 권영세 전 의원과 3선 의원 출신 김기현 전 울산시장도 있다. “미꾸라지(김태우 전 수사관) 변호를 맡게 됐다”며 청와대 민간인 사찰 의혹 사건의 초기 변호를 맡았던 석동현 변호사는 틈틈이 정계 진출을 노리고 있다.

진보 쪽에는 2006~2009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을 지낸 백승헌 변호사가 대표적이다. 현 정부 들어 공직 차출설이 나오고 있으나 본인이 사양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최근 KB금융지주 노조로부터 ‘노동이사’직 제안을 수락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만 20세 나이에 최연소로 사법시험(25회)에 합격했으며 부인인 정연순 변호사도 민변 회장(2016~2018년)을 지냈다. 백석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사무총장이 형이다. 차병직 변호사는 참여연대에서 20년 이상 활동한 한국 시민운동의 산증인으로 아직도 휴대폰을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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