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전세 속출하는데…전세보증보험, 청와대 청원까지 '뭇매'

입력 2019-02-13 07:59  


# "이 아파트 전세 들어올 때가 1억6000만원이었어요. 지금은 매매가가 1억3000만원입니다. 집주인은 다음 세입자가 들어오기 전까진 보증금을 못 준다네요. 요즘은 집 걱정에 잠도 안 옵니다."

경남 김해시 장유동에 거주 중인 30대 주부 김지혜(가명)씨의 하소연이다. 김 씨는 작년 12월 전세 계약이 만료됐지만 아직 이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전셋값은 2년 전 1억6000만원에서 최근 1억원으로 떨어졌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은 없어 부랴부랴 알아본 전세보증보험은 가입 기간이 지나 있었다. 김 씨는 "혹여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까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해·울산·세종 등 지방을 중심으로 깡통전세가 속출하면서 전세자금대출 부실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깡통전세의 대안으로 전세보증보험을 내걸고 있지만 까다로운 가입조건이 도마 위에 올랐다. 가입 규정을 완화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금융당국은 시중은행들에 "고객에게 전세금반환보증보험(전세보증보험) 가입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전세보증보험은 전세 계약이 끝날 때 전세보증금 반환을 책임지는 금융상품이다. 역전세·깡통전세로 대출 부실화 우려가 고개를 들자 금융당국이 전세보증보험을 안전장치로 들고 나선 것이다.

실제로 지방을 중심으로 역전세 우려는 커지고 있다.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국민은행 조사 기준 13주 연속 하락했다. 올해 들어 하락폭은 더 커졌다. 부동산시장이 급랭하면서 지난달 셋째주에는 0.08%, 넷째주에는 0.07% 떨어졌다. 10년 만에 가장 큰 낙폭이다.

이미 경남 김해와 거제, 울산, 충청권 일부 지역에서는 김 씨 사례와 같은 깡통전세가 속출하고 있다. 역전세는 현재 전셋값이 기존 전세값보다 떨어진 상황, 깡통전세는 집값이 기존 전세가격 이하로 떨어져 집을 팔아도 전세 보증금을 상환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전세보증보험은 전셋값 하락기에 세입자를 지탱해 주지만, 모든 세입자가 이를 다 누릴 순 없다. 가입절차 문턱이 높은 탓이다.

현재 전세보증보험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또는 서울보증보험에서만 가입이 가능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은 전셋값 기준 수도권은 7억원 이하, 지방은 5억원 이하인 아파트만 가입할 수 있다. 보험 가입 당시 전세 계약기간이 절반 이상 남아 있어야 한다.

SGI서울보증의 '전세금보장 신용보험'은 아파트에는 전세금 제한이 없고, 아파트가 아닌 곳은 10억원 이하만 가입할 수 있다. 계약기간 2년 중 10개월이 지나기 전에 가입해야 한다.

주택담보대출 등 선순위 설정 최고액과 임차보증금 합산액이 해당 주택의 '추정 시가'보다 많아도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예컨대 추정 시가가 4억원인 집에 주택담보대출이 1억5000만원 잡혀있고, 전세보증금이 3억원이면 주택담보대출액과 전세보증금 합이 4억5000만원으로 추정 시가보다 많아 전세보증보험에 가입이 불가능하다.

빌라나 오피스텔, 다세대 주택 세입자들은 가입이 더 까다롭다.

서울보증은 임대인이 개인 임대사업자로 등록돼 있지 않으면 동일 임대인에 대해 2건까지만 보증서를 발급한다. 다른 세입자(임차인)들이 먼저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면 보험 가입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더불어 △임차물건의 등기부등본상에 압류, 가압류, 가처분, 가등기, 경매신청 등 임대인의 소유권 행사에 제한사항이 있는 경우 △토지와 건물의 소유주가 다른 경우(신규 분양 아파트는 제외) △임대인이 보험계약 규제자(금융회사 신용관리대상자)인 경우 등도 보험 가입이 안된다.

이에 전세보증보험의 가입조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이 같은 내용의 국민청원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1월부터 전날까지 전세보증보험과 관련해 9건의 청원 글이 게재됐다.

한 청원인은 "전세보증보험은 애초에 깡통전세 유발하는 빌라나 원룸 오피스텔은 가입조차 어렵다"며 "누구나 가입 가능한 국가 차원의 보증보험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청원인은 "전세보증보험은 계약 기간이 2분의 1 이상 남아있을 때만 가입이 가능한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최근 부동산 시장의 흐름에서 1년 전부터 미리 준비하기가 쉽지 않다"며 "보증금 반환을 위한 법적대응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은 서민들이 감당하기 어렵다. 전세보증보험의 가입 규정을 완화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작년 말 기준 전세자금 대출 규모는 92조원. 올 초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 위험 요인으로 깡통전세를 꼽은 바 있다. 깡통전세와 더불어 전세보증보험의 가입 조건, 보험료 등을 놓고 금융당국의 수심이 깊어지고 있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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