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한 과세체계 어떻길래
금융상품별 稅명목 제각각
국내 주식에 0.3% 거래세…해외 주식은 양도세 부과
해외펀드는 배당소득세 내야, 투자손익 합산해 稅부과 불가능
"증권사 직원도 헷갈릴 정도"
선진국은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양도세 내는 대주주 범위 확대도
개인 주식투자 의욕 떨어뜨려 모험적 투자 위해 稅재정비 필요
[ 하수정/마지혜 기자 ]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한 증권사의 VIP 고객 김모씨는 지난해 국내외 주식과 펀드 투자로 총 2000만원의 손실을 봤다. 국내 주식과 해외 주식, 해외 주식형 펀드 등에 분산투자했지만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 등으로 세계 금융시장이 불안했던 탓에 수익을 내지 못했다. 김씨가 분통이 터진 것은 투자 손실을 웃도는 2015만원의 세금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투자로 손해를 봤지만 주식을 팔 때마다 0.3%의 증권거래세를 꼬박꼬박 떼였고, 전체 펀드 투자 수익률은 마이너스였지만 미국펀드는 돈을 벌었다고 세금을 내야 했다. 투자 관련 세금이 불합리하다고 느낀 김씨는 차라리 비과세 상품인 브라질채권에 투자하는 게 낫겠다 싶어 포트폴리오를 전면 재조정하고 있다.
복잡한 세금 체계가 투자 의욕 꺾어
개인 자산가들이 금융상품 투자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복잡한 세금이 꼽힌다. 법인은 금융상품에서 발생한 모든 소득을 일괄해 법인세를 과세한다. 그러나 개인은 금융상품별로 제각각 다른 명목의 세금이 붙는 데다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넘으면 연금·사업·근로소득과 합산해 종합과세대상이 되다 보니 부담이 더 커진다는 지적이다. 안예희 KB증권 도곡스타PB센터 팀장은 “증권사 직원들도 골치 아플 정도로 한국은 금융상품 과세 체계가 복잡하다”며 “개인투자자들의 자본시장 접근을 막는 장벽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한 계좌 안에서 이뤄진 매매라 할지라도 손익통산(손실과 이익을 통합 계산해 세금을 매기는 방법)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크다. 국내 주식과 해외 주식, 펀드, 파생상품별로 과세 체계가 다르다 보니 손익을 합산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돼 있다. 금융상품이 도입될 때마다 당시 사정에 맞춰 ‘끼워맞추기’식 세금 체계를 적용한 탓이다. 국내 주식은 매도할 때 0.3%의 거래세를 떼고 해외 주식은 양도소득에 대해 22%를 부과한다. 펀드는 해지(환매)할 때의 이익이건 중간의 분배금이건 배당소득세 명목이 붙는다. 최종 합산해 손실을 보더라도 여러 개의 펀드 중 한 개 펀드에서 이익을 보면 배당소득세를 문다.
반면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선 개인별로 금융상품을 손익통산해 일괄 과세한다.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조세정책의 기본 원칙에 따라 모든 금융상품의 손익을 계산한 뒤 이익이 난 부분에만 양도소득세를 물린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김씨의 사례와 같은 투자 포트폴리오로 미국인이나 일본인이 현지에서 투자해 손실이 났다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융상품 과세 전면 재정비 필요”
여당이 주식과 펀드 등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과세 방식을 일원화한다는 방향을 잡았지만 시장에선 중장기적으로 금융상품 과세 체계 전반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 과세 체계는 자본시장의 장기적이고 모험적인 유동성 공급 기능을 오히려 저해할 유인이 많다”며 “금융투자 과세를 전면 재정비해 국민 자산 증식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증권거래세의 단계적 폐지와 양도소득세 전환에 대한 법안은 발의된 상태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증권거래세를 폐지하고 양도소득세로 과세 방식을 일원화하는 증권거래세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증권거래세를 2020년부터 20%씩 단계적으로 인하한 뒤 폐지하고 양도소득세로 과세 방식을 일원화하는 방식이다.
양도세 대주주 요건 완화 ‘발등의 불’
금융상품의 과세체계를 양도소득세로 일원화하면 현행법상 주식 양도차익 과세대상인 대주주 범위도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율의 세금을 물게 되는 대주주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져 개인 자산가에게 세금 폭탄이 안겨질 수 있어서다.
국내 주식의 경우 일반 투자자들은 거래세를 내지만 대주주는 양도차익 10~30%의 세금을 물어야 한다. 대주주 요건이 지난해부터 주식 보유금액 15억원(지분 1%) 이상으로 낮아졌고, 내년에는 10억원, 2021년에는 3억원으로 떨어진다. 지난해 말 폐장 전 1주일간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서 2조원어치를 매도한 것도 대주주 양도소득세를 피하기 위해서란 분석이다.
하수정/마지혜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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