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원순 기자 ] 자원의 배분에서 효율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것은 인류의 오랜 관심사다. 지대추구(rent seeking)를 경계하는 것도 결국은 이 문제에 닿는다. 기득권의 울타리 안에서 자기 이익을 위해 벌이는 모든 비생산적 활동을 ‘지대추구 행위’라고 하는 것도 그래서다. 국가 권력을 통해 특혜를 얻으려는 특정한 개인·집단·지역의 배타적 행위는 모두 지대추구일 수밖에 없다.
재작년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동산 임대료·보유세와 토지공개념을 연결시키며 이 말을 써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높은 부동산 가격을 지대추구로 연결시킨 것도 논리적 비약이었거니와, “지대추구의 개념을 제대로 알고 하는 말이냐”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지대(地代)’의 사전적 원래 의미는 ‘토지 임대료’이지만 오늘날 지대추구는 모든 형태의 기득권 문제로 확 바뀌었다.
그제 한국제도경제학회 총회에서 지대추구의 연구 논의와 관련해 의미 있는 진전이 나왔다. 지대추구를 ‘경제적 자유’와 연계한 김행범 부산대 교수에게 ‘한국제도경제학술상’을 시상한 것이다. 김 교수는 “경제적 자유가 확립된 국가일수록 지대추구 행위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고, 이는 국민소득 증가로 이어진다”는 논문을 펴냈다. 인간이 만든 제도가 경제행위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는 제도경제학의 취지에 딱 맞는 성과였다.
김 교수는 흥미로운 사례를 제시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승전국 영국 프랑스보다 패전국인 일본 독일이 부흥한 것은 기존의 지대추구 구조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대목이다. 이 사례는 지대추구 연구에 큰 족적을 남긴 미국 경제학자 맨슈어 올슨의 역작 《국가의 흥망성쇠》에 구체적으로 나온다. 전쟁과 같은 극한적 상황이 아니고는 만연한 지대추구의 철폐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6·25전쟁이 있었기에 한국의 전근대적 악습과 구태가 그나마 청산됐다는 지적과도 맥이 닿는다. 올슨은 이익집단 분석으로 옛 소련의 초기 융성과 이른 패망도 분석했지만, 국가 초기에는 없던 지대추구 현상이 기득권으로 누적돼 망한 나라는 소련만이 아니다.
자유로운 시장이 아닌, ‘경제의 정치화’에 의한 자원 배분은 지대추구 현상을 심화시키기 마련이다. 기득권과의 싸움이라는 차원에서 규제 혁파, 탈(脫)지대추구로서 개혁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지대추구가 과거처럼 음성적이고 부끄러움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간판 밑에서 뻔뻔스럽게 추구되고 있다.”(김행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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