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사설 깊이 읽기] 급변하는 경제환경 맞춰 물가지수 산정도 개선해 가야

입력 2019-02-1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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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사설] 물가지표, 체감도 더 반영되도록 개선할 필요 있다

통계청이 작성하는 ‘소비자물가지수’와 한국은행의 ‘물가인식조사’ 간 괴리도가 지난달 1년 만에 가장 크게 벌어졌다. 정부의 공식 물가통계와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물가 간 괴리는 흔히 있는 일이고 자연스러운 측면도 있다. 문제는 일련의 경제정책이 실생활 체감물가는 도외시하고 타성적인 통계만 바라볼 때 착시를 일으키거나 왜곡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0.8% 오르는 데 그쳤다. 해오던 대로 460개 품목을 대상으로 가중치까지 반영한 복잡한 산식에 따른 것이었다. 한은이 도시 가구를 대상으로 수치화한 물가인식, 즉 체감물가 상승률 2.4%와 차이가 많이 났다.

정부의 공식 통계와 달리 체감물가가 많이 오른 것으로 조사된 것은 외식비(3.1%), 농·축·수산물(2.5%) 등의 가격이 뛴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체감물가가 다소 주관적이고 지역별·소득별·가구형태별·연령별 체감도에도 편차는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정부 통계가 물가 변동의 실상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 개선하는 게 마땅하다.

물가통계에 소비자 체감도를 완벽하게 반영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통계가 관련법에 따라 엄격한 절차를 거쳐 수정·보완된다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경제여건은 급변하는데도 실효성이 의심되는 통계에 매달리고, 이를 놓고 ‘급등한 최저임금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느니 없다느니, 작다느니 크다느니 하는 논쟁이라도 되풀이된다면 어떻게 되겠나. 경제실상과 정책의 파급효과에 대한 오독(誤讀)을 경계해야 한다.

소비자물가지수와 별도로 내는 생활물가지수나 신선식품지수처럼 인건비 부문에 초점을 맞춘 보조지표 생산도 생각해 볼 만하다. 고용사정이 악화되면서 지난달 실업급여 지급액이 사상 최대치를 또 경신했을 정도로 당분간 이 문제는 우리 경제에 핵심 변수가 될 것이기에 하는 제안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 때 ‘MB물가지수’처럼 물가에 개입·관리하려는 차원이라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독립성·중립성·전문성의 바탕 위에서 국가통계를 잘 관리하고 개선해 기업과 개별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정책의 방향을 바로잡는 노력을 더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2월12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공식 물가와 체감 물가 차이 커
인위적 해석으로 왜곡하면 곤란
구성종목도 합리적인 재편 필요

물가는 양면성이 분명한 경제지표다. 가령 실업률은 낮은 게 좋고, 경제성장률은 높은 게 좋다. 투자 관련 지표도 높게 나오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물가는 치솟으면 인플레이션 우려를 낳게 하고, 너무 낮으면 디플레이션, 즉 경기침체를 걱정하게 한다. 저개발국이나 신흥국에서는 높은 물가가 자주 문제가 되지만, 일본처럼 성장이 정체된 국가에선 너무 낮은 물가를 어느 정도 끌어올리는 게 과제도 된다.

경제 관련 국가기관 간 관점이나 목표도 엇갈리는 것이 물가다. 한국에서는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와 통화의 안정에 좀 더 비중을 둬온 한국은행 사이에 적지 않은 간극이 있다. 정부는 물가가 오르는 게 ‘서민 경제’의 큰 부담 요인이라고 인식하면서 물가를 관리 대상으로 여겨온 경향이 있다. 이전보다는 덜해졌다지만 아직도 그런 속성이 강하다. 전기·가스요금, 대중교통요금 등은 인상 요인이 생겨도 공기업에 떠안기를 압박하고 가격 반영을 미루게 하는 것도 그래서다. 대학등록금 인상을 막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앙은행은 정부의 이런 정책에 반드시 보조를 맞추진 않는다.

일본은행이 연간 2%의 물가상승률을 목표로 삼은 것은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저개발국 중앙은행과 딴판이다. 지나치게 안정적이거나 심지어 내리는 물가가 경제 발전에 큰 걸림돌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물론 일본의 물가는 저성장의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경험적으로 물가는 꾸준히 오르는 것, 종종 급등으로 인한 파장이 문제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따금 부동산 등지에서 큰 폭의 가격 하락(디플레이션)으로 ‘깡통주택’이 나오면서 무리한 구입자가 애를 먹고, 금융회사 부실이 커지는 부작용도 나타났지만 국지적 현상이었다.

물가는 매우 중요한 생활 속 경제지표지만 인식이나 체감도는 지역·연령·소득·가구형태에 따라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통계청)는 최대공약치로 생활에 밀접한 460개 품목을 정해두고 가격 변동을 측정해 단일 지수로 매월 발표한다. 현행 460개도 고정된 게 아니라 2015년 정해진 것이다. 소비자 생활 밀접도에 따라 품목별 가중치도 다르다. 이처럼 중립성·객관성을 꾀한다는 것이 오히려 체감도를 떨어지게 하는 요인이 된다.

문제는 이렇게 나온 월간 물가지수가 경제정책의 주요한 기준점도 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소비자물가지수로만 보면 급등한 최저임금으로 인한 물가 상승은 잘 확인되지 않는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식당가, 편의점 등 영세사업자의 줄폐업이 엄연한 현실이다.

결국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 맞춰 소비자물가지수에 개선점을 조심스럽게 찾아보자는 얘기다. 물론 정부 통계를 함부로 손댈 수는 없다. 정권의 의지에 따라 개악의 개연성도 있고, 수시로 바꾸다가는 통계의 신뢰성을 훼손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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