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복지 확대는 재원 아닌 경제윤리 문제

입력 2019-02-18 17:20  

"복지 확대 선심 쓰는 정부, 시민의 국가 의존성만 키울 뿐
자유·재산권 보호가 국가의 의무…개인과 기업의 자유를 존중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게 해, 삶과 경제 역동성 살려야"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자유철학아카데미 원장 >



최근 정부는 ‘포용국가’를 내세우며 향후 5년간 총 332조원가량을 복지 부문에 쏟아붓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통해 고용·교육·소득·건강 등 분야에서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흥미로운 건 복지 확대에 대한 사회 일각의 반응이다. “문제는 재원일 뿐 복지 청사진에 반대할 국민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철학의 빈곤에서 비롯된 듯하다.

복지 확대는 돈이 아니라 경제 윤리의 문제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 복지는 사회적 기본권(사회권)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복지권을 집행하는 게 국가의 ‘의무’라는 뜻이다. 이런 인식은 위험한 것인데도 문재인 정부는 진지한 논의 없이 그 의무의 확대를 고집하고 있다. 그 결과 사회권은 주택, 교육, 무상급식, 환경 등 다수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국가에 요구하는 ‘권리 과잉’을, 그래서 필연적으로 국가 권력의 확대를 부른다.

사회권 이행에는 돈이 필요한데 중요한 건 이 돈의 성격이다. 이 돈은 정부가 조세의 형태로 납세자 재산에서 빼앗은 것이다. 국가의 복지의무란 납세자에게서 돈을 빼앗아 정부가 선호하는 사회계층에 분배하는 일이다. 약탈 행위는 그 주체가 누구든 부도덕하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재분배, 이전 지출 또는 규제를 통한 복지 확대가 아니라 폭력, 사기, 계약 위반 등 불의(不義)로부터 시민의 자유와 재산권을 보호하는 데 있다는 걸 주지할 필요가 있다.

복지국가의 법 개념도 문제다. 흔히 재분배, 이전 지출, 규제를 위한 것도 ‘법’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는 법 개념의 왜곡이요 타락이다. 법은 개인이든 기업이든 차별하지 않고 예외 없이 적용할 수 있어야 하고, 재분배 같은 정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돼서도 안 된다.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는 강제, 폭력, 사기 같은 불의를 막는 게 법의 역할이다. 사람들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마음 놓고 경제활동에 매진할 수 있고 그래서 시장에서 빈곤, 실업, 성장, 양극화가 자연스레 해결되는 이유도 법의 그런 역할 때문이다. 그러나 복지 확대를 위한 재분배나 규제는 소득주도성장, 혁신경제를 위한 지원·육성법 등과 똑같이 법다운 법이 될 수 없다. 이들은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법치와 관련해서도 복지 확대는 문제가 심각하다. 개인이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영역을 확립해 지배자가 멋대로 법을 만드는 걸 막는 게 법치의 역할이다. 차별 입법과 법의 정치화를 억제해 국가 권력으로부터 시민의 자유와 재산을 차별 없이 보호하는 것이 법치다. 그런데 복지는 특정 계층에 대한 우대정책일 뿐만 아니라 복지 확대는 곧 국가 권력의 확대이고 그래서 그것은 개인이 자율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여지를 대폭적으로 제한한다.

법치는 개인과 기업의 자율성을 전제로 한다. 차별적 규제를 풀고 누구나 동등한 자유를 허용하는 국가야말로 법치를 존중하는 자유국가다. 그런 국가만이 사람 하나하나의 존엄을 똑같이 중시한다. 기업인이 대통령이나 장관에게 머리를 숙일 필요도, 정부가 기업인을 무시하거나 졸병 부리듯 할 수도 없다.

현 정부는 대중은 분별력과 독창성이 없는, 그래서 국가가 없으면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건강도 돌볼 수 없는 무력한 인간이라는 이유로 대중의 자율성을 축소한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자율적으로 행동할 역량이 있기 때문에 자유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등장한 인물이 이마누엘 칸트가 아니던가!

인간의 존엄성은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정신에서 비롯된다. 국가가 개인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생각은 ‘치명적 자만’이며,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고 폭정을 부를 뿐이다. 그런 국가는 시민의 독립심을 갉아먹고 복지 의존심만 강화한다. 시민의 추진력과 진취성, 끈기와 인내심, 모험심 등 사회 발전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기업가정신의 위축을 부른다. 이런 도덕의 파괴는 경제활동의 역동성을 약화시킨다. 복지 확대는 ‘삶의 질을 세계 10위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는커녕 수백만 명의 시민이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베네수엘라로 가는 길’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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