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재편 골몰하는 전 세계 車업계처럼
현금 쟁여 놓고 위기 대응, 미래 열어야
김경준 <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대대적인 사업 재편에 나서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달 ‘자동차업계에 카마겟돈(car-mageddon) 공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동차(car)와 아마겟돈(armageddon·대혼란)을 결합한 단어의 어감 자체가 충격적이다.
메리 바라 미국 GM 회장은 “향후 5년간 진행될 변화는 지난 50년간의 변화보다 더 클 것”이라는 인식에서 북미 5개 공장을 폐쇄하고 1만여 명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주도하고 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도 임원을 대폭 감축하고 직급을 통폐합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폭스바겐, 포드자동차, 르노-닛산 등 여타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런 구조조정의 배경은 단기적 위기 대응과 장기적 사업 재편의 두 가지로 해석된다. 최근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무역분쟁, 금융긴축,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중국 경기둔화의 4대 먹구름이 몰려온다고 경고했듯이 향후 경기 전망은 불투명하다. 또 2020년대 중반에는 자동차산업이 내연기관차에서 자율주행차로 시장 주도권이 넘어가는 변곡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국내 기업의 회사채 발행 규모는 6조3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작년에는 삼성을 비롯해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신세계, CJ 등이 부동산과 비주력 사업을 매각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처럼 유동성을 확충하는 배경은 1차적으로 불황에 대응한 위기관리다. 경기둔화가 예상되고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정부 정책을 남발하는 상황에서는 리스크 관리가 우선이다. 2차적으로는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디지털 격변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자금의 확보라는 전략적 방향성도 내포돼 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의 자산운용에서 부동산에 대한 관점이 바뀌고 있는 점은 주목된다. 과거 고도성장 시기에 부동산은 안정성과 수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우량자산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가격은 오르게 마련이고 임대수익 등 현금 흐름도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성장 국면으로 들어서고 정보화 혁명이 진행되면서 상황은 반전했다. 가격 상승이 제한적이고 수익성도 하락하는데 부동산 특성상 거래 비용이 높고 자금이 고정화되는 단점이 부각됐다. 산업 시대 기업의 3요소가 토지, 노동, 자본의 유형자산이라면 정보화 시대에는 기술, 특허, 브랜드 등 무형자산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더욱이 아날로그 시대의 기업이 자산의 집합이라면 디지털 시대에는 알고리즘의 집합으로 변모하고 있다. 아마존, 넷플릭스, 우버, 에어비앤비 등의 경쟁력은 모두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알고리즘의 우위에서 연원한다. 부동산의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업종을 불문하고 디지털 격변의 영향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유통에서 온라인은 오프라인을 압도하기 시작했고 미디어산업을 주도하던 공중파와 케이블은 유튜브에 밀리고 있다. 택시에서 식당, 숙박업까지 디지털 기술 확산에 따른 경쟁구도 변화가 전방위적으로 진행 중이다.
기존 기업들도 나름대로 대응에 부심하지만 아직 명확한 방향성을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디지털 격변의 총론에는 동의하지만 사업 전략과 운영 프로세스에 적용하는 각론에서는 갈피를 잡기 어렵다. 현실적 대안으로 대규모 투자보다는 소규모 투자로 접근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하지만 디지털 격변은 업종별로 본격화하면 급격히 진행되는 특성이 있다. 시장과 기술의 추이를 따라가며 최적의 시점에서 디지털 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선제적 현금 확보가 필요한 배경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자산을 줄여 단기적인 리스크를 관리하고 장기적인 디지털 투자를 준비하는 방향은 대기업만의 과제가 아니다. 중견기업도 중소기업도 국내외 대기업이 선제적 현금 확보에 나서는 배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가는 언제나 현재의 위험을 관리하고 미래의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특히 올해는 중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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