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요즘 우리 노래에서는 잊힌 단어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우리 동요와 가곡에 가장 많이 등장했던 노랫말이 ‘고향’이었다. 우리는 왜 더 이상 고향을 노래하지 않게 된 걸까? 고향이 우리를 잊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고향을 잃어버린 것일까? 마음이 변한 것은 분명 고향이 아니라 우리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떠난 고향은 아직도 거기에 언제나 조용히 있기 때문이다.
지난 설 명절, 고향을 찾는 행렬보다 해외로 떠난 사람이 더 늘었다고 한다. 우리네 형편이 예전보다 나아진 데다 연휴인 만큼 어렵사리 해외 나들이를 택한 것을 뭐라고 탓할 수는 없다. 우리 고향도 그쯤은 너그럽게 이해해 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낳고 키워준 우리의 고향을 너무 섭섭하게 해선 안 된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다.
과거 우리는 고향을 떠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엄연히 구분했다. 스스로 고향을 떠나는 것은 출향이요,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진 것은 실향이었다. 스스로 기꺼이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귀향이요, 어쩔 수 없이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은 낙향이었다.
서러운 타향살이를 이겨내게 해주는 원동력 중 하나가 어쩌다 길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설 또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부모님과 어린 동생들에게 줄 선물 보따리를 안고 서울역 앞에서 ‘칙칙-칙’ 하는 기차소리를 들으며 차표 창구에 줄을 서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었다.
그러고 보니 고향을 떠날 때는 넘고 넘어도 넘어야 할 고갯마루가 왜 그리 많았는지, 슬퍼서 울기보다 힘이 들어 울었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섬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에게 고개를 넘는 것은 못할 일도 아니었다. 필자가 어린 시절 제주도에서 뭍을 오갈 때만 해도 나무로 만든 작은 배를 타야 해서 작은 풍랑에도 뜨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다. 폭풍우 치는 부둣가에서 뱃삯도 다 써버리고 발만 동동 구르던 것도 우리들의 옛 모습이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교통이 편리해져 맘만 먹으면 고향까지 두세 시간이다 보니 고향이 사무치게 그리운 곳은 못 되나 보다.
작곡가 쇼팽은 고향 폴란드를 떠날 때 담아온 병 속의 흙을 죽을 때까지 품에 안고 살았다고 한다. 39세에 세상을 등지고 심장이 고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자신의 음악과 그리움을 그 속에 담고 살았다. 그렇다. 쇼팽만큼은 아니어도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곳으로 마음의 고향을 하나쯤은 안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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