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5년 더 올라간 '육체노동 연한'…정년연장 논의 불붙이나

입력 2019-02-21 17:39  

육체근로자 정년은 65세
大法 '가동연한 60세' 판례 30년 만에 변경

대법 "사회·경제 구조 등 제반사정 현저히 변화
평균 수명 10년 늘고 실질 은퇴연령은 72세"

사고 피해자가 받게 되는 손해배상액 늘어
"勞의 정년연장 요구 늘 것…기업 부담 가중 우려"



[ 신연수 기자 ] 대법원이 육체근로자의 정년인 ‘가동연한’을 만 60세에서 65세로 5년 연장했다. 198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55세에서 60세로 변경한 이후 30년 만에 나온 결정이다. 급속하게 늘어난 평균 수명, 은퇴 연령 등 인구 고령화를 반영했다. 사고로 죽거나 다쳤을 때 받게 되는 손해배상액이 커지고, 노동계를 중심으로 기업 정년 연장 논의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대법 “사회·경제적 제반 사정 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1일 선고한 사건의 원고는 2015년 인천의 한 수영장에서 당시 4세 나이로 사망한 아동의 유가족이다. 이들은 안전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인천시와 수영장 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2심은 모두 피해 아동이 사고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만 60세까지 돈을 벌었을 것으로 가정하고 배상액을 산정했다.

법원은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인정되는 법적 한계 연령인 가동연한을 기준으로 손해배상액을 산정한다. 아직 직업이 없는 미성년자나 별도의 정년 규정이 없는 육체근로자의 가동연한은 지금껏 60세로 인정돼왔다. 1989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당시 기능직공무원 정년이 만 58세이고 기초연금 수급 시기가 만 60세인 점 등을 고려해 가동연한을 만 55세에서 60세로 연장했다.

그러나 최근 일부 하급심에서 가동연한을 65세로 높여 인정한 판결이 잇따라 나오자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지난해 11월 열린 공개변론에서 원고 측은 “1989년 이후 평균 기대수명이 10년 늘어났고, 고령 노동자 생산가능인구 비중도 21.2%로 올라갔다”며 “가동연한을 65세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피고와 보험업계 측에선 “실제 일할 수 있는 ‘건강기대수명’은 오히려 줄었고, 각종 보험료 인상으로 경제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반박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9명의 다수의견으로 가동연한을 만 65세로 늘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1989년 전원합의체 판결의 근거가 된 사회·경제적 제반 사정이 변한 것을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국민 평균 기대수명이 1989년 남자 67.0세, 여자 75.3세에서 2017년 남자 79.7세, 여자 85.7세로 늘었다”며 “법정 정년도 만 60세 이상으로 연장됐고, 실질 은퇴연령은 2011~2016년 남성 72.0세, 여성 72.2세로 조사됐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법상 연금수급 개시연령이 점차 연장돼 2033년 이후부터 65세인 점, 각종 사회보장 법령의 보호 대상이 되는 고령자 기준이 65세 이상인 점 등도 고려됐다.

대법관 3명은 다른 의견을 냈다. 조희대·이동원 대법관은 만 63세로 늘리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김재형 대법관은 “가동연한을 일률적으로 특정 연령으로 단정해 선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만 60세 이상’이라고 포괄적으로 선언하는 데 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사 단체교섭에도 영향 미칠 듯

이번 판결에 따라 사고로 죽거나 다친 피해자들이 민사소송에서 인정받는 배상액수가 늘어나게 됐다. 예를 들어 일용근로자로 일하다 교통사고를 당해 35세에 사망했을 경우 받을 수 있는 보상금이 2억7700만원에서 3억200만원으로 늘어난다. 62세에 부상을 입어 일할 수 없게 된 일용근로자는 원래 배상을 못 받지만, 가동연한이 65세로 늘어남에 따라 3년분인 1450만원을 배상받게 되는 식이다.

기업들의 정년 연장 논의도 불붙을 전망이다. 2013년 개정된 현행 고령자고용법은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노동팀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례가 각 기업의 노사 단체교섭 과정에서 정년을 늘려야 한다는 노조 측에 강력한 근거가 될 것”이라며 “기업들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선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돼 법정 정년 자체가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은 육체근로자의 가동연한이 67세이고,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65세다. 일본은 법 개정을 통해 기업 정년을 65세로 늘린 2013년에 가동연한도 67세가 됐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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