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병훈 기자 ] 유전자 분석 바이오기업들이 소비자 의뢰 유전자 검사(DTC) 규제 완화를 위해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시범사업을 보이콧하기로 결정했다. 3년 넘게 규제 완화 시늉만 내는 복지부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는 이유에서다.
마크로젠 등 19개 유전자 검사업체 모임인 유전체기업협의회(유기협)는 21일 “회원사 간 논의를 통해 복지부의 DTC 인증제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복지부가 당초 논의 내용과 달리 시범사업 항목을 축소한 데다 질병과 조금이라도 연관성이 있는 항목은 제외하는 등 산업계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DTC는 병원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 개인이 직접 침 등을 DTC업체에 보내면 유전자 검사를 통해 특정 질환의 발병 가능성 등을 알려주는 서비스다. 국내에서는 2016년 제도가 도입되면서 과잉진료를 촉발할 우려가 있다는 의료계 반발에 밀려 체질량지수, 탈모 등 웰니스 관련 12개 항목만 허용됐다. 일본 중국 등에서는 DTC 규제를 거의 하지 않는다.
복지부는 업계의 규제 완화 요구에 따라 용역보고서를 발주해 지난해 121개 항목으로 허용 대상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의료계 반발 등으로 기미, 여드름, 새치 등 57개 항목만 추가하고 시범사업을 거쳐 허용하는 방안을 마련해 최근 공고했다. 유기협 관계자는 “공고된 57개 항목이 국민의 건강 관리 및 산업 활성화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유기협은 산업통상자원부의 ‘규제 샌드박스’에는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유기협은 “산업부의 규제 샌드박스는 국민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중대질병을 대상으로 선정해 고무적”이라며 “유기협 차원에서 공동으로 적극 참여키로 합의했다”고 했다.
산업부는 최근 마크로젠에 고혈압, 뇌졸중, 대장암 등 중대질병 13개에 대한 DTC를 허용해주는 규제 샌드박스 사업을 허용했다.
업계가 주무부처인 복지부에 등을 돌리고 산업부 편에 선 것은 이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3년 동안 설득한 결과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만큼 복지부에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시범사업 추진위원 13명 가운데 산업계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만 넣는 등 그동안 미덥지 않은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유기협의 집단 불참에도 불구하고 시범사업 설명회 등 일정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DTC 서비스 제공 업체는 유기협 회원사가 아닌 곳도 많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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