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 산업 선도' 경남 거창군
승강기 밸리 특구 지정에 '들썩'…권역별 관광벨트 사업 가속도
[ 김해연 기자 ]
‘거창(巨創)하다.’
‘일의 규모나 형태가 매우 크고 넓다’는 의미의 이 형용사가 도시 브랜드가 된 곳이 있다. 경남 북서부 지역의 거점 도시 거창군(居昌郡)이다. 인구 6만3000명 정도의 소규모 농촌지역이 이런 ‘거창한’ 브랜드를 갖게 된 것은 순전히 지명 덕이다. 군을 상징하는 통합 브랜드 ‘거창한 거창’을 만든 이후 전국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이 고장 쌀 상표는 ‘밥맛이 거창합니다’가 됐다.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은 당연히 ‘거창한 사과’ ‘거창한 딸기’가 됐으며, 마을 곳곳에는 거창한 고깃집과 거창한 국수 등 지명을 살린 브랜드가 넘쳐난다.
거창은 예부터 ‘크게 일어날 밝은 곳’ ‘매우 넓은 들과 벌판’이란 뜻에서 거열(居烈), 거타(居陀), 아림(娥林) 등으로 불리다가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거창으로 명명돼 오늘에 이른다. 지리적으로는 경북 전북과 마주하고 김천시 장수군 무주군 성주군 합천군 산청군 함양군 등 7개 시·군과 경계를 이룬다.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등 3대 국립공원 가운데 자리잡아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전형적인 농업 기반의 거창군이 올 들어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공들여 온 승강기산업 기반이 하나둘 제모습을 갖춰가면서 관련 기업과 연구원 이전 소식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구인모 거창군수는 “승강기 생산에 필요한 인프라가 집적화하면서 거창은 농업에 더해 산업기반까지 갖추게 됐다”며 “천혜의 자연환경과 승강기산업에 특화된 강점을 잘 살려 명품 도시로 우뚝 서겠다”고 말했다.
승강기산업으로 들썩이는 거창
올 들어 거창군엔 경사가 겹쳤다. 승강기밸리가 산업특구로 지정된 데 이어 국내 유일의 승강기안전인증연구원이 문을 연다는 소식이 동시에 전해졌다. 남상면 일원에 165만3000㎡ 규모로 조성 중인 승강기밸리는 거창의 승강기산업을 대표하는 곳이다. 관련 기업들이 입주할 수 있는 산업단지는 물론 연구개발(R&D)센터와 승강기대학까지 모여 있다.
거창군의 특구 지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거창사과·딸기산업특구’ ‘거창 항노화힐링특구’에 이어 세 번째다. 하지만 군이 승강기 특구 지정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농업 인구가 1만5725명으로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하는 전형적인 농업 도시에 그나마 산업기반을 확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승강기 관련 인프라를 집적화한 이후 거창을 찾는 기업도 꾸준히 늘고 있다. 승강기밸리 조성을 본격화한 2011~2013년 승강기 선도 기업 24곳이 거창에 투자했다. 2016년 2개, 2017년 5개, 지난해 6개 업체가 거창으로 이전해 지금까지(총 37개) 700여 명의 고용 인원을 창출했다.
2013년 대구에서 거창승강기밸리로 사업장을 옮긴 모든엘리베이트 김호일 대표는 승강기산업이 거창에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로 담당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가장 먼저 꼽았다. 김 대표는 “이전을 망설일 당시 거창군 공무원들이 수시로 찾아와 설득했다”며 “거의 모든 인프라가 갖춰졌기 때문에 앞으로 3년 이내 지역과 승강기산업 모두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노력으로 농촌에 산업기반 뿌리내려
거창군의 산업구조는 1차 산업 47%, 2차 산업 15%, 3차 산업 38%로 분포돼 있다. 소백산맥 주변 경북과 전북의 경계를 이루는 내륙 산간지역이라 경지면적은 16%로 좁다. 군민 대부분이 영세농일 수밖에 없다. 농업 비중이 높은 여느 농촌지역과 같이 거창군도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피해갈 수 없는 난제였다. 1982년 전까지만 해도 10만 명을 넘겨 시 승격을 저울질했던 인구는 1990년 8만 명, 2000년 7만 명 선이 무너졌다.
농업 위주의 산업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함이 정점에 달했을 2008년 무렵 지방자치단체와 정치권의 노력이 더해져 승강기산업이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승강기 관련 산·학·연을 집중시키는 승강기밸리 조성사업에 나서 한국승강기대학, 승강기R&D센터, 승강기산업단지 등 관련 인프라를 차례로 구축했다. 144억원을 투입한 승강기R&D센터는 2434㎡ 규모 기업지원동과 1665㎡ 규모 시험연구동, 102m 높이의 테스트 타워를 갖춰 남부 내륙의 소도시 거창이 ‘승강기산업 메카’로 거듭났음을 알리는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10여 년간 승강기산업 구축 과정을 지켜본 임영수 거창군 미래전략과장은 “기업체 한 곳이라도 더 모셔오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허사가 되는 등 돌이켜보면 우여곡절도 많았다”며 “승강기산업이 더 번창해 고향 경제를 살리는 버팀목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힐링 고장으로 권역별 개발
‘산이 좋고 물이 좋다’는 이 평범한 말이 거창만큼 잘 어울리는 곳도 없다. 거창 지역민들에게 깊이 각인된 자부심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외부에서 단 한 방울의 물도 유입되지 않은 청정수가 흐르는 땅에 산다’는 것이다. 거창은 남덕유산에서 발원해 월성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만으로 충족하는 고장이다.
동시에 거창을 일컬어 ‘고산천국(高山天國)의 고장’이라고도 한다. 지리산과 가야산 덕유산 등 3개 국립공원의 중심에 있어 해발 1000m 이상의 명산 23개가 군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거창군은 승강기를 중심으로 한 산업기반 확충과 함께 권역별 관광벨트화 사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역을 5대 권역으로 나눠 특색 있는 관광 자원을 구축하는 것이다. 군은 2020년까지 동부권(가조·가북면)은 웰니스 건강, 서부권(마리·위천·북상면)은 트레킹과 역사문화, 남부권(남상·남하·신원면)은 생태와 유적, 북부권(주상·웅양·고제면)은 액티비티관광, 중심권(거창읍)은 도심 관광을 테마로 개발하기로 했다.
거창=김해연 기자 ha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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