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법치의 길

입력 2019-02-24 17:23  

김현 <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hyunkim@sechanglaw.com >


필자는 법정에 출입할 때 재판석을 향해 목례를 한다. 사법부에 대한 존경의 표시다. 젊은 변호사 간디가 남아프리카 법원에서 동포를 위해 변론할 때 재판장은 그에게 터번을 벗어달라고 요청했다. 간디의 인도 친구들은 민족적 자존심이므로 굴복해선 안 된다고 했으나, 간디는 법정 규칙에 따랐다. 우리가 법원의 권위를 존중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통해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지켜달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김경수 경남지사의 1심 재판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여당 원내대표는 선고 다음날 “양승태 적폐 사단이 조직적 저항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26만 명이 재판에 관여한 법관 전원의 사퇴를 촉구했다. 담당 재판장을 탄핵하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무작위로 배정된 항소심 재판장을 ‘양승태 키즈’로 간주해 재판부 교체를 요구하는 견해도 있다.

판결에 대한 비판은 허용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다소 지나치다. 법치주의는 법관의 독립과 재판에 대한 신뢰를 전제한다. 법관의 독립은 권력기관뿐 아니라 여론으로부터의 독립을 포함한다. 지금과 같은 여론 조성은 법관의 독립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 특정 정파의 의견에 반하는 판결을 했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매도당하고 탄핵 논란까지 생긴다면 담당 법관은 소신껏 판결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 사건 1심 재판장은 국정농단 사건에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장관,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김경숙 전 이화여대 학장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징역 8년을 선고했다. 그가 정치적 편향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임기를 마쳤고 구속된 상태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제기된 법관들은 재판에서 배제되고 수사도 받고 있다. ‘양승태 적폐 사단’이 존재해 조직적 저항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정치인은 지도자로서 솔선수범해 법치주의를 수호해야 한다. 불만이 있더라도 일단 판결을 존중하고, 항소를 통해 법정에서 억울함을 다퉈야 할 것이다. 법정 밖에서 판결을 비난한다면 향후 유리한 판결을 받기 위한 여론 조성으로 오해될 수 있다.

법관 탄핵도 마찬가지다. 사법행정권 남용의 핵심인 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차장은 이미 구속됐다. 이들의 지휘를 받은 일반 법관들을 법원 징계와 형사처벌을 넘어 탄핵까지 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사법부를 위축시키고 법관의 독립을 훼손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법치주의 위기가 슬기롭게 극복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법치의 가치를 되새기고 성숙한 자세로 판결 결과에 대응하는 것이 민주사회의 주요한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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