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게임' 양심적 병역거부 판단기준 될까

입력 2019-02-27 15:55  

'양심과 신념' 판단 기준 논란

재판부, 檢의 게임 접속기록 조회 승인
인권단체 "게임은 사생활일 뿐"




[ 이현진 기자 ] 폭력적인 온라인 살상·전투게임이 종교·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정당성을 가려내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정당한 사유’에 따른 종교·양심적 병역거부를 무죄 취지로 판단한 이후 이 ‘정당한 사유’를 가려내기 위한 공방이 치열해지고 있다. 검찰은 병역거부자가 온라인 살상·전투게임을 즐겼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들고나왔다. 인권단체들은 “게임은 사생활 문제일 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양심과 종교적 신념의 척도에 명확한 기준이 없어 병역거부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병역거부자가 총싸움 게임을 한다면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울산지방검찰청은 재판이 진행 중인 11건의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담당 재판부에 ‘온라인 게임 가입과 이용사실’에 대한 사실조회 신청을 했다. 재판부는 11건의 신청을 모두 수용했다. 게임업체에 병역거부자들의 게임 가입 여부와 이용기간 등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요청 대상 게임은 배틀그라운드 서든어택 스페셜포스 오버워치 디아블로 리그오브레전드 스타크래프트 등 8개 게임이다. 총이나 칼을 사용하는 1인칭 슈팅게임(FPS)이나 실시간 전략게임(RTS)이다. 울산지검은 “이용자가 상대방 캐릭터를 죽이는 것을 승리 목표나 수단으로 삼는 게임”이라며 “종교·양심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의 신념이 얼마나 진실한지 알 수 있는 척도”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말 제주지검 역시 같은 이유로 병역거부자의 특정 게임 접속기록을 확인했다.

검찰이 게임 이용 여부까지 조사하는 것은 그만큼 ‘양심의 유무’를 판단할 방법이 마땅찮기 때문이다. 여기서 양심이란 도덕적 기준이 아니라 헌법 제19조가 보장하는 것으로, 세계관·신조·가치관 등을 뜻한다. 지난해 말 대법원은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증명하는 10가지 기준을 제시했는데 여기에 ‘피고인의 평소 생활양식’ 등이 포함돼 있다.

“명확한 기준 없어 논란 계속될 것”

“게임으로 폭력성을 검증한다”는 검찰의 논리에 반발도 만만찮다. 해당 게임을 한다고 해서 모두 폭력적인 성향이 있다거나 전쟁에 찬성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국가 중 특정 게임을 하는지 여부로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판단하는 곳은 없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사이버 게임에서의 사격은 현실 세계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며 “양심을 판별한다는 이유로 병역거부자들의 사생활까지 들여다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군인권센터는 이 사안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인권위 관계자는 “아직 (게임 여부를 양심의 기준으로 삼는 것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은 정해진 바 없다”며 “양심을 가늠하는 기준 역시 부처와 국민의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법조계에서는 앞으로 이런 논란이 더욱 잦아질 것으로 본다. ‘진정한 양심’을 형사 절차로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9일 처음으로 종교적 이유가 아니라 ‘그 밖의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구모씨(28)에게 무죄를 선고한 수원지방법원의 판례가 나오자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 “폭력과 전쟁은 정당화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는 구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서울의 한 지방법원 판사는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개인의 신념이 얼마나 진실한지 파악하는 것은 지난한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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