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하는 영화인데, 왜 이걸 했냐고요?"
2012년 영화 '알투비:리턴투베이스' 이후 7년 만에 국내에서 상영하는 영화였다. 하지만 언론시사회 공개 후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한 CG, 평면적인 캐릭터들과 밋밋한 이야기, 여기에 개연성 없는 스토리까지 집중 공격을 받았다. 2년이 넘는 시간을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을 위해 몰두했던 정지훈은 이런 상황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7년 만에 돌아온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정지훈이 웃으며 한 말 역시 뼈 있는 농담이었다. "많이 힘들었고, 많이 답답했다"는 정지훈은 영화의 잡음부터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까지 속시원히 풀어 놓았다.
◆ '자전차왕 엄복동'을 한 이유
'자전차왕 엄복동'은 배우 이범수가 제작한 영화로 유명하다. 정지훈 역시 이범수에게 직접 시나리오를 전달받았다. 정지훈의 영어 선생님이었던 이윤진의 남편이기도 한 이범수는 평소에 간간히 안부 문자를 주고받는 정도의 사이였다고.
정지훈은 "처음엔 제목만 보고 '가족영화인가' 싶었는데, 실존 인물이라는 이야기에 참여하게 됐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무엇보다 "엄복동이란 청년이 있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며 "일제 강점기, 핍박 받았던 시절에 엄복동이라는 청년이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해서 큰 위로가 되지 않았나.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사회 이후 불거진 캐릭터, '국뽕' 지적 등에 대해도 직접 항변했다. 밋밋한 캐릭터는 극 후반부 폭발을 위한 것이며, 문제의 애국가 장면 역시 실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정지훈은 "엄복동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다"며 "애국심에 MSG를 많이 쳐서 '감격스럽고 감동스러워요'가 아니라, 정말 자전거를 좋아해서 탔고, 좋아하던 형신(강소라 분)이를 위해 자전거를 단상 위에 내 던진 것"이라고 해당 장면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엄복동의 분노를 보다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초반부엔 평면적으로 연기했고, 마지막에 '엄복동을 지킵시다'라고 관객들이 나온 부분은 실제로 당시 신문기사에도 기록된 내용"이라고 소개했다.
◆ 비→정지훈, 배우로 몰두했던 시간
정지훈은 배우, 가수 두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몇 안되는 인물이다. 2002년 '나쁜남자'를 시작으로 비라는 이름으로 발표하는 노래마다 대박을 터트렸다. 여기에 영화 '스피드레이서', '닌자 어쌔신' 등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하며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로 선정돼 화제가 됐다. 최근엔 KBS 2TV '더유닛' 등에 출연하면서 후배 양성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지훈은 "겉으로 보기엔 평온해 보이는데, 물 속에서 발을 열심히 움직이는 오리처럼 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며 "티가 안났을 뿐"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러면서 "제가 작품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보이는 분들도 있는데, 가수와 배우를 둘 다 하다보니 스케줄 때문에 좋은 작품을 놓치는 경우도 많다"며 "그러던 와중에 '자전차왕 엄복동'은 재밌는 이야기였고, 꼭 하고 싶었던 작품이었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출연을 결정한 후엔 작품에만 메달렸다. 엄복동을 연기하기 위해 정지훈은 7개월 동안 매일매일 500m 트랙을 140바퀴 씩 돌았다. 주변 상황도 녹록치 않았다. 촬영 기간 내내 날씨도 따라주지 않았고, 많이 시도된 적이 없었던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스포츠 영화였던 만큼 시행 착오도 적지 않았다.
정지훈은 "제가 아니였으면 촬영하다가 도망갔을지도 모른다"면서 "이걸 해내고 말겠다는 승부욕으로 촬영에 임했던 것 같다"고 치열했던 시간을 되돌아봤다. 이어 "저라도 중심을 잘 잡아야 할 것 같았다"며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관객들의 평가만 남았는데, 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거듭 애정을 보였다.
◆ 김태희 남편, 강소라와 로맨스는?
진지하게 '자전차왕 엄복동'에 대한 항변을 이어가던 정지훈에게 극중 등장하는 후배 배우 강소라에 대한 로맨스를 물었다. 정지훈은 2017년 1월 배우 김태희와 결혼했다. 그리고 그 해 10월 첫째 딸이 태어났고, 얼마 전 둘째 임신 소식이 알려져 관심을 모았다. 정지훈에게 "강소라와 멜로를 김태희도 알고 있냐"고 질문하자 "아직 모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지훈은 "집에서 신을 신고 문 밖을 나서는 순간 저는 배우 정지훈, 가수 비가 된다"며 "결혼하기 전부터 일과 가정 사항은 확실히 선을 긋자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마 시사회를 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면서 특유의 웃음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김태희를 만나고, 가장을 꾸리면서 느끼게 되는 안락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열정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정지훈은 할리우드에서도 몸관리를 하고, 파티에 참석하지 않아서 담당 에이전시에서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조언을 받을 만큼 자기 관리를 철저히 했다. 정지훈은 "강박증이 있을 정도로 '난 놀아선 안돼', '흐트러지면 안돼'라면서 날 몰아세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정지훈은 또 "4, 5년 전만해도 자고 일어났을 때 부재중 메시지가 많이 와 있으면 인터넷을 켜서 제 이름부터 검색해봤다"며 "숨이 막혀서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제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런 압박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털어 놓았다.
이어 "언젠간 홀연히 자연인으로 사라지고 싶다"며 "한 10년 후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향후 행보에 대한 계획을 전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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